북한이 예상과 달리 ‘통일’ 삭제 등을 다루는 개헌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지도층과 주민을 설득할만한 충분한 논리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지시한 개헌이 계속 지지부진하면 리더십 위기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통일연구원은 이달 7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에 대한 소속 전문가들의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11일 공개했다.
연구원들은 북한이 이번 헌법 개정에서 ‘통일’ 문구를 삭제하거나 남한과 경계를 다루는 영토 규정을 넣지 않았다는 데 무게를 뒀다. 김갑식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헌법개정 시 중요한 내용은 다음날 보도됐는데 이번에 그런 조치가 없어 관련 사실이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평가했다. 조한범 석좌연구위원은 “이번 회의에 선전선동 담당 리일환 비서가 참석하지 않은 것도 영토 규정이나 통일·민족 개념 삭제 등 주요 논의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올 1월 직접 개헌을 지시했는데도 이번 회의에서 다뤄지지 않은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내부 교통 정리가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을 짚었다. 나용우 북한연구실장은 “선대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한 통일을 삭제하는 것은 곧 유훈을 포기하는 것인데 북한 주민들에게 어떻게 합리화하는지 문제가 정리 안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조 위원은 “민족·통일 개념 폐기는 주체사상의 핵심과 충돌하고 김정은 집권 명분까지 삭제한다”며 “적대적 2국가론 발언을 기점으로 내부의 이데올로기 혼란을 자초했고 정리하는 데 한계를 보이며 북한 엘리트 집단의 균열이 생겼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향후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미국의 새 행정부가 출범하는 내년도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의 개헌은 내부 정리를 어느 정도 이룬 시점인 올해 말이나 내년초에 단행될 것으로 연구원들은 전망했다. 오경섭 연구위원은 “헌법 개정까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엘리트와 인민을 설득하며 올해 말이나 내년초 개헌에 나설 것”이라며 “만약 이뤄지지 않는다면 김정은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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