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폐기와 항구적인 평화 실현을 위해 원자폭탄이 가져온 피해의 실상을 다음 세대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니혼히단쿄)의 미마키 도모유키(82) 회장은 11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핵무기 폐지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며 “우리(원폭 생존자)가 살아 있을 때 핵무기를 지구상에서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증언을 통해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일본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비핵 3원칙’을 주창한 1974년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 이후 두 번째다.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 마련된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미마키 회장은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다 2021년 별세한 쓰보이 스나오 전 이사장을 언급하면서 “쓰보이 씨처럼 지금까지 활동해온 피폭자도 기뻐할 것”이라며 “(히로시마현) 평화공원 원폭 위령비에 수상 사실을 알리러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대표위원인 다나카 데루미 씨는 교도통신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며 “세계의 핵무기 상황에 위기감을 가진 사람이 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기도 스에이치 니혼히단쿄 사무국장은 “핵무기 금지 조약 채택과 발효를 피폭자들이 실현한 것에 대한 수상이라고 생각한다”며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반인간적 행위에서 시작돼 미국으로부터 탄압받고 일본 정부로부터 오랫동안 버림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니혼히단쿄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는 원폭 피해자들의 풀뿌리 운동 시민단체로 1956년 결성됐다. 단체명 중 ‘원수폭’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뜻하며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세상에서 없애자는 의미를 담았다.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에 피폭자들은 병고와 빈곤·차별에 시달려왔고 아무런 지원도 못 받은 채 방치됐다. 니혼히단쿄는 원폭 희생자에게 대한 국가보상과 유가족의 생활 보장을 요구했으며 1978년에는 유엔 군축 특별총회에 38명을 파견해 핵무기 철폐를 호소했다.
2010년 유엔 핵무기확산방지조약(NPT) 검토회의에서는 “과거의 고통이 잊히고 있는 것 같아 잊혀질까 두렵다”는 생존자의 발표로 국제사회의 동참을 이끌어냈으며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 원폭 피해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핵무기의 개발과 사용을 금지하는 NPT가 2017년 채택되는 데도 이 단체의 공이 컸던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내년은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지 80년이 되는 해다. 당시 12만 명이 사망했고 이후에도 피폭자들의 사망이 이어졌다. 일본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원폭 생존자는 1980년도 말 기준 약 37만 명을 기록한 뒤 매년 감소해 2021년도 말에는 3분의 1 수준인 11만 8935명으로 집계됐다.
노벨위원회는 과거에도 핵무기 폐기 운동 단체나 개인에게 노벨평화상을 여섯 차례 수여하며 핵무기 금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핵무기가 인류 전체에 미치는 실존적인 위협을 경계해왔다.
가깝게는 2017년 핵무기에 반대하는 비정부기구(NGO) 단체 연합체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이 상을 받았다. 노벨위는 당시 “핵무기 사용이 인류에 초래할 재앙적 결과들에 대한 관심을 끌어모으고 조약에 근거한 핵무기 금지를 달성하기 위한 획기적인 노력을 기울인 공로로 상을 수여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올해 니혼히단쿄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 핵, 이란 핵 프로그램 등으로 전 세계의 핵 위협이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외르겐 바트네 프뤼드네스 노르웨이 노벨위원장은 “핵무기 사용을 금기하고 있는 국제 규범이 압박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며 “핵전쟁은 인류의 문명을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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