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낮췄다. 2021년 8월 이후 3년 2개월 만의 금리 피벗(통화정책 전환)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상승률이 떨어지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하기 시작해 긴축 속도를 소폭 축소하고 영향을 점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치솟는 집값과 가계부채 누적 등을 이유로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는 와중에도 올해 8월까지 13회 연속 금리 동결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역대 최장 기간의 고금리에 2분기 경제성장률이 -0.2%에 그칠 정도로 내수 경기가 곤두박질치고 서민 가계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금리 인하 결단을 더 미루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날 한은은 8월에 2.4%로 하향 조정한 올해 성장률 전망 달성 여부도 불확실해졌다는 의견을 냈다.
내수를 짓누르던 고금리 기조가 끝나면서 꽉 막혔던 민간 소비와 투자에 숨통이 트이고 자영업자 등 취약 계층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가계부채 뇌관과 집값 상승 부담이다. 9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5조 7000억 원 늘어난 1135조 7000억 원에 달했다. 증가 폭은 8월 대비 38.7% 줄었지만 추세 전환을 장담할 수는 없다. 서울 집값 역시 주춤해지면서도 29주 연속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금리 인하가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대출 수요를 자극하고 집값에 다시 불을 붙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총재가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여력이 있다”면서도 “금통위원 6명 중 5명은 3개월 뒤에도 3.25%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라며 연내 금리 동결에 무게를 둔 것도 이 때문이다.
피벗의 성패는 지금부터의 정책 역량에 달려 있다. 한은과 정부는 대출 규제와 주택 공급, 금리 인하 속도를 정교하게 조절해 내수 견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가계부채 불안을 해소하고 부동산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는 최적의 정책 조합을 찾아내 실행해야 한다. 글로벌 피벗과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큰 시점인 만큼 물가와 금융·외환시장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이 더욱 중요하다.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한은과 정부의 긴밀한 정책 공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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