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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시설·동물놀이터는 되는데…"票 안된다" 산모복지 뒷짐

■ 기부채납 안되는 공공산후조리원

공공조리원 반값인데 20곳 그쳐

부산 등 광역지자체 8곳은 '전무'

설립·운영비용 부담에 추진 못해

신생아 사고 책임 떠안을 우려도

법제도 개선해 출산환경 바꿔야





서울 용산구는 지난달 서울 구청장협의회 회의에서 공공기여(기부채납)로 공공 산후조리원을 지을 수 없다며 정부와 서울시에 법령 개정을 건의하자고 제안했다. 용산에서는 산후조리원을 찾기 어렵자 신혼부부들이 강남 등에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조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지난해 하반기부터 건설 경기가 살아나면서 재건축·재개발이 활발해지고 있어 공공기여로 공공 산후조리원을 설립하기 위한 법령 개정의 적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자치구 간 이견에 가로막혀 이 안건은 건의도 해보지 못하고 보류됐다.

용산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공공기여로 공공 산후조리원을 짓는 정책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예산 문제를 정비사업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법제도 때문에 추진조차 할 수 없다. 저출생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만큼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보건복지부가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공공 산후조리원은 20개에 불과하다. 전남·강원·경북·서울·경기 등 9개 광역 지자체에 최소 1개씩 존재하지만 나머지 8개 지자체에는 단 한 곳도 없다.

2주 입소 비용이 최고 1700만 원에 이를 만큼 민간 산후조리원 가격이 무섭게 치솟으면서 공공 산후조리원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비용이 민간 업체 대비 절반(경기 포천시 2주 168만 원)에 불과하고 지자체가 직접 운영해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는 산모들의 인기에 힘입어 내년부터 주민들이 25만 원에 산후조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이처럼 공공 산후조리원의 인기가 치솟는데도 지자체들이 선뜻 시설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는 돈이다. 부지에 새 건물을 짓거나 민간 건물을 사들여야 하고 조리원 인건비 등 운영 비용도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남도의 경우 현재 운영 중인 밀양(동부권) 공공 산후조리원 운영비는 도와 시가 50%씩 부담하고 있고 앞으로 사천(서부권)과 거창(북부권)에 건립할 공공 산후조리원 운영비는 도와 시군이 각각 30%와 70%를 부담한다.

신종우 경남도 복지여성국장은 “출산 환경 보완을 위해서는 국비 지원 등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사천 공공 산후조리원 건립과 운영 시기는 더 늦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구가 공공기여를 통해 공공 산후조리원을 지으려 했던 배경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용산에 민간 산후조리원은 딱 한 곳뿐인데 2주 이용 비용이 무려 1300만 원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용산 땅값이 치솟으면서 임대료 부담 때문에 민간 산후조리원이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며 “한남동·이촌동 등 재개발이 활발해지고 있어 공공기여로 공공 산후조리원을 짓는 방법을 검토하려 했으나 법에 가로막혀 추진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공공기여 관련 법이 초저출생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데서 발생한 문제다. 지자체 도시 개발 사업 때 공공기여 받을 수 있는 시설 용도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명시된 기반 시설과 공공시설 중에서 정하는데 여기에 노인복지관 등만 있을 뿐 공공 산후조리원은 빠져 있다. 시행령에 없더라도 시도 조례로 공공기여 시설을 정할 수 있지만 여기에도 공공임대주택 등만 있을 뿐 공공 산후조리원은 없다. 도시 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적용해 공원 내 설립하는 방법이 가능하지만 시행규칙 역시 장사시설·동물놀이터 등만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개정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공공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 사망·감염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 공공시설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할 경우 지자체장의 책임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지자체장들이 망설이고 있다.

지자체장들이 선출직이다 보니 공공 산후조리원이 ‘표'에서 후순위로 밀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령화로 노인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노인복지시설이나 문화 시설이 공공기여로 선호된다는 것이다. 산후조리원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인식을 주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점도 지자체의 고민거리다. 지자체의 한 보건 담당 관계자는 “공공 산후조리원이 확산되면 그만큼 사고 위험이 커지고 민간 업체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며 “어린이집조차도 기피 시실이 되고 있는데 공공 산후조리원을 쉽게 지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올해 합계출산율이 10년 만에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는 상황에서 출산률 반등 불씨를 살리려면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산후 조리 실태 조사에서 산모의 선호 산후 조리 장소로 78%가 산후조리원으로 꼽을 정도로 산후조리원이 필수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비용 부담을 낮추려면 공공 산후조리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희선 동국대일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산후조리 비용을 지원해주는 것보다 차라리 공공 산후조리원을 지어서 싸게 공급하는게 더 낫다”며 “비싼 산후조리 비용을 낮추려면 공공산후조리원이 확대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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