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K반도체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해 도태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14일 개최한 ‘역대 산업부 장관 초청 특별 대담’에서 전직 장관들은 우리 반도체 산업이 1위 자리에 안주하다 몰락한 일본 도시바, 미국 인텔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정부 지원과 전방위 혁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 기업이 주력인 메모리 분야에서 국가 차원의 전폭 지원에 힘입은 중국과 대만에 뒤처지고 있고, 인공지능(AI) 등 첨단 반도체 시장은 주도권 싸움에서 패배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 업체의 D램 시장 점유율은 올 3분기 6.0% 수준에서 내년 3분기에는 10.1%를 기록해 1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업체들은 채산성이 떨어지는 전통(구형) 메모리 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에서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저가 제품부터 중국 기업에 시장을 잠식당한 2차전지·디스플레이 산업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의 추격세가 무서운데도 우리 기업들은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기는커녕 파운드리(위탁 생산)나 첨단 AI 패키징 분야에서 대만 TSMC 등 선두 주자들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의 주축이자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첨단 전략산업이다. 미국·일본·중국 등 경쟁국들은 글로벌 반도체 대항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수십조 원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쏟아내고 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하는 등 전방위 지원에 나서고 있다. 반면 우리 기업은 해묵은 ‘대기업 특혜’ 프레임에 막혀 공장 가동을 위한 용수·전력 등 인프라 구축마저 차질을 빚고 있다. 대응이 한참 뒤처진 만큼 이제라도 경쟁국보다 빠른 속도로 민관정이 원팀을 이뤄 반도체 총력전을 벌여야 할 때다. 여야 정치권은 투자세액공제율을 높이고 재정 지원을 강화하는 등 반도체 산업에 대한 포괄적 지원책을 담은 ‘반도체특별법’ 처리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부는 세제·예산·금융 등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말고 보조금 지급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와 고급 인재 육성을 통한 초격차 기술 확보로 화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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