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임금 운동가 릴리 레드베터가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4일(현지시간) CNN 등 외신은 2009년 미국에서 제정된 공정임금법에 영감을 준 레드베터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어머니가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레드베터는 말년에 극심한 호흡 부전으로 고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38년 앨라배마주 잭슨빌에서 태어난 레드베터는 고교 졸업 후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로 살았다. 41세에 타이어회사 굿이어에 입사해 19년간 근무하며 관리자 직책까지 올랐다.
우연히 사무실 바닥에서 발견한 쪽지로 인해 인생이 바뀌게 된다. 쪽지에는 직원들의 임금이 적혀 있었는데, 자신이 남성 관리자들보다 매달 수천 달러나 적은 월급을 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1999년 레드베터는 굿이어를 상대로 성차별 소송을 제기했다. 처음에는 연방법원에서 19년간 남자 직원들보다 적게 받은 미지급 임금과 손해배상을 합쳐 380만 달러(약 51억 6000만원)를 받을 수 있도록 승소 판결을 받았다.
굿이어 측의 항소로 이 결정은 뒤집혔고, 대법원까지 간 사건은 결국 원고 패소로 끝났다. 대법원은 5대4로 굿이어의 손을 들어주며, 레드베터가 차별을 인지한 시점부터 180일 이내에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레드베터의 요구는 정당하나 소송 제기가 너무 늦었다는 이유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레드베터는 남은 생애를 성평등 활동가로 살아가게 된다. 그의 노력은 2009년 결실을 맺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 '레드베터 방지법'으로 알려진 공정임금법이 제정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서명식에서 레드베터를 "다음 세대를 위해 옳다고 여기는 일을 위해 지금까지 싸워온 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레드베터는 오바마 대통령 바로 곁에서 법안 서명을 지켜봤다.
공정임금법 제정 10년 후인 2019년에도 레드베터는 동일임금 주장을 계속했다. CNN 기고를 통해 "임금 차별의 현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법이 충분히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레드베터의 별세 소식에 오바마 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레드베터는 개척자가 되려고 한 게 아니라 그저 열심히 일한 대가로 남자와 같은 급여를 받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과 자녀들, 손주들을 위해 더 높은 목표를 세웠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미국 민주당 소속 추이 가르시아 하원의원은 "백인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히스패닉과 흑인 여성은 51~66센트를 버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레드베터의 싸움은 끝나지 않은 것"이라며 지속적인 노력을 약속했다.
미국 임금평등 국가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인구조사 데이터 분석 결과, 미국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여성은 84센트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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