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와 비닐, 페트병 따위가 풍선에 실려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다. 5월부터 28차례 벌어진 일이다. 이달 11일까지의 집계니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초기엔 거름과 분뇨, 담배꽁초가 실려 오기도 했다. 지금은 오물이지만, 내일은 폭발물이나 생화학 물질이 월남할지도 모른다. “발견 시 군부대나 경찰에 신고 바랍니다”라는 문자는 경각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자아낸다. 풍선이 공포가 된 세상이다. 서울시도 초기 대응반을 24시간 가동하면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풍선만 쳐다보면 놓치는 문제가 있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오물 풍선을 북한 수뇌부가 직접 만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오물을 긁어모아 봉투에 욱여넣는 일은 힘없는 주민이나 말단 군인의 몫일 것이다. 거름과 분뇨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라. 종일 배가 곯았을 사람들을 말이다. 휴전선을 건너온 오물 풍선에는 누군가의 수치심과 굶주림이 담겨있다. 그래서 오물 풍선이 서울 상공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나는 화가 나기보다 애처롭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정작 화가 나는 건 따로 있다. 입버릇처럼 진보와 인권을 운운하는 이들의 태도다. 그들의 논평은 대개 양비론으로 짜인다. 북한을 비판하면서 현 정부까지 싸잡아 공격한다. 그런데 논평 어디에도 오물 풍선을 만드는 사람의 처지에서 고민한 흔적이 없다. 가히 투명 인간 취급하는 식이다. 내가 이해하는 진보주의자는 약자부터 챙기는 사람들인데, 마치 강자를 대변하는 모습 같다. 약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을 진보라 칭하면 모순이다.
새삼 이런 말을 꺼내는 건 2024년이 특별한 해여서다. 올해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2014년의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침해를 두고 “반인도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라 결론내렸다. 몇 달 전 공개된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연례보고서에는 지난 10년간 북한에서 자행된 반인도 범죄가 낱낱이 기록돼 있다. 더욱이 올해는 ‘북한이탈주민의 날’(7.14)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한 해이기도 하다. 지난 7월 11일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북한 인권 포럼을 개최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내친김에 왕년의 민주화 투사들에게 묻고 싶다. 핵을 만지작거리면서 주민을 굶기고, 오물을 가져오라 닦달하며, 공개처형도 일삼는 권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느닷없이 “통일, 하지 맙시다”를 말하기 전에 그간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한 이유부터 밝혀야 하는 게 아니냐고. 6000여 개 오물 풍선을 제작하는 데 쓰인 돈은 6억 원 대로 추산된다. 쌀 1000톤은 너끈히 구매할 수 있는 돈이다. 당신들은 왜 침묵하는가. “사람이 먼저”라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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