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ASML의 3분기 수주량이 반 토막 나고 내년 실적 전망까지 내려가면서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텔과 삼성전자(005930)가 파운드리 투자를 줄인 데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지속된 데 따른 여파다. 인공지능(AI) 칩셋에 수요가 몰리며 엔비디아 AI 가속기 등을 독점 생산하는 TSMC의 독주가 굳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5일(현지 시간) ASML은 3분기 수주액이 26억 유로(약 3조 8500억 원)에 그쳤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서 예상하던 53억 9000만 유로(약 8조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ASML은 부진한 장비 수주에 내년 매출 전망도 기존 400억 유로(약 59조 3500억 원)에서 300억~350억 유로(약 44조 5000억~52조 원)로 하향 조정했다.
ASML은 반도체 공장 건설 문제로 장비 출시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을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꼽았다. 최근 구조조정에 돌입한 인텔이 독일과 폴란드 등지에 계획했던 파운드리 건설을 연기하며 ASML이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투자 지연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ASML 실적 쇼크의 여파로 16일 국내 반도체 업종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부진이 ASML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2거래일 만에 다시 ‘5만전자’로 주저앉았다. 외국인은 이날까지 역대 최장인 26일 연속 삼성전자 주식을 순매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실적 쇼크가 반도체 시장의 업사이클 종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SML이 지난해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대중 규제 강화를 우려한 중국 업체들의 선(先)주문 폭주와 이에 따른 일종의 착시 효과가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류형근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메모리 기업들이 EUV 반입을 줄여 전반적으로 캐펙스(생산능력)를 조정하는 것은 오히려 공급과잉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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