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북한의 남북연결도로 폭파 쇼는 구태의연한 충격요법이다. 김정은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군사분계선(MDL) 10m 앞에서 폭파하고 연신 카메라로 촬영하는 장면은 극장국가다운 행태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에서는 무인기 평양 침투에 대해 군중 동원 및 대남 비난을 하며 내부 단합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남북연결도로 폭발은 헌법 개정에 반영된 적대국가론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지난주 베일에 쌓였던 최고인민회의 헌법 개정에 통일부정론이 반영됐다는 점을 암시했다.
김정은은 지난 연말 선언했던 적대적 두 국가론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대내외에 확실하게 하기 위해 폭파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무엇을 잘 만들지는 못해도 부수는 것은 잘하는 공산주의의 파괴적 속성이 발동했다. 보여줄 게 없을 때 오히려 있는 것을 폭파해 결연한 도발 의지를 과시하는 자해 수법은 공산당들의 단골 메뉴다. 과거 조지프 스탈린과 마오쩌둥도 주기적으로 파괴 공작을 구사해 서방세계를 혼란스럽게 했다.
북한 인민들은 김정은의 통일부정론에 대해 의아스러워하는 반응이다. 뜬금없는 통일포기론으로 선대의 유지를 부정하는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김일성·김정일 등 선대 지도자들이 조국 통일을 명분으로 주민들에게 가난과 결핍을 인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정은 역시 2012년 집권 이후 통일을 부르짖었다. 집권 12년 만에 갑자기 통일을 포기하고 남한을 적국이라고 선언하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핵무기 개발 외에 특별한 업적이 없는 김정은으로서는 아예 판을 바꾸는 전략을 구사했다. 공산당의 만조기와 간조기 전술 중에서 지금은 썰물시기로서 문을 닫고 성 안에 웅크리는 농성(籠城) 전략이 필요한 시기라는 판단이다.
특히 최근 남한 K한류의 북한 유입현상은 위험 수위에 이르렀지만 차단이 용이하지 않다. 2020년부터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3대 악법을 제정하고 단속하고 있지만 힘이 부친다. 평양은 남측 정부와 궁합이 맞지 않고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집권할 때까지 대화가 여의치 않은 만큼 지금은 러시아와 군사협력으로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무인기의 평양 상공 출현은 평양에 두 가지 함의를 주었다. 우선 북한의 하늘이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통합 방공망 시스템과 달리 개별적인 지역 방공 시스템이다. 개성 상공에서 물체가 포착돼도 원산에서 인지하지 못하며 스텔스 대비 기능이 미약하다. 지난 달 중국의 동방항공이 인천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기장의 실수로 연평도 북측 영공으로 진입했지만 북측 방공망은 이를 실시간으로 인지하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대남 적개심을 고취해 주민들의 충성을 유도하는 내부 단속 소재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자발적인 군 입대 독려 및 총동원령으로 인민들의 단합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무인기 평양 침투에 분노해 140만 명의 청년이 군복을 입겠다며 입대와 재입대를 자원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전형적인 대량 주민동원 전술이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국방·안전협의회라는 평양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처음으로 개최해 관련부서장과 대남 도발을 논의하는 모습을 연출한 만큼 일정 부분의 도발은 불가피하다. 향후 북한의 도발은 전투와 비전투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전투적 도발은 아무래도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중심으로 해상 침투 및 아군 함정과 우리 어선에 대한 공격이 예상된다. 비무장지대 등 육상에서의 도발은 남측의 맞대응으로 쌍방의 피해가 발생하며 치고 빠지기 전략이 용이하지 않다. 오히려 비전투적 도발의 가능성이 높다. 소형 폭약이 장착된 공기 부양물을 서울 상공에 날려 보낼 수 있다. 맞대응 성격의 군사용 드론의 비행도 시도할 수 있다.
겨울 북서풍을 활용해 단순 오물 풍선을 넘어서는 지저분한(dirty) 도발로 남남갈등을 유도할 것이다. 남측의 여론 분열은 북한이 의도하는 최우선 목표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북한의 오물풍선과 도발을 가져왔다는 식의 편향적 논리는 부적절하다. 핵무기를 기반으로 하는 김정은의 군사팽창주의는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달리고 있다. 인민들의 삶은 그의 안중에 없다.
우리의 대응은 자명하다. 북한의 도발은 내부 단속에 주안점을 두면서 러시아를 믿고 대외 힘자랑을 하는 측면이 강하다. 우리의 국방력은 K방산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고 있다. 국지 도발로 한반도에서 포성이 날 경우 북한의 충격도 적지 않은 만큼 경거망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차분한 일상 속에서 정부의 스마트한 대응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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