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對)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미국 당국이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TSMC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TSMC에 인공지능(AI)·스마트폰용 반도체를 우회 주문했는데 이를 인지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17일(현지 시간) 익명의 소식통 2명을 인용해 미 상무부가 최근 몇 주간 TSMC 측에 화웨이용 스마트폰·AI 칩 제조에 관여했는지 문의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화웨이가 이름이 다른 중개 회사를 통해 주문을 대신 넣는 방식으로 TSMC로부터 우회적으로 칩을 구매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TSMC가 고객사에 대한 실사 의무를 다했는지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미국 수출 규정의 위반이 확인될 경우 미 당국은 TSMC에 미국 기술에 대한 일시적인 접근 제한이나 벌금 부과 등의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미 상무부는 지난해 시게이트테크놀로지가 화웨이에 하드디스크드라이브 기술을 판매한 혐의로 벌금 3억 달러(약 4113억 원)를 부과했다. 미 상무부와 화웨이 측은 디인포메이션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으며 TSMC 측은 수출통제를 포함한 관련 법률·규정 준수에 전념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앞서 미국 정부는 2020년 국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화웨이가 미국산 장비를 이용해 만들어진 반도체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화웨이가 미 상무부의 승인 없이 미국 기술을 이용해 칩을 만드는 것도 막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중국의 기술 굴기는 꺾이지 않았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은 부진을 겪었으나 지난해 8월 중국산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첨단 반도체를 장착한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미국에 충격을 줬다. 미국 규제 당국은 반도체 등 첨단 제품이 대중 수출 규제를 피해 특정 개인 또는 국가를 우회해 중국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보고 이를 막기 위해 통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정 국가를 상대로 AI 반도체 수출에 상한을 설정하는 방식까지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디인포메이션은 “TSMC에 대한 미 정부의 조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TSMC는 애플·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 기업)들을 고객사로 두고 반도체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TSMC는 미 반도체법 보조금 지원을 받아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 세 곳에 650억 달러(약 89조 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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