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와 1위 메모리 기업인 삼성전자에 대한 시장 평가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17일 미국 뉴욕 증시에서 TSMC는 시가총액 1조 670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인공지능(AI) 반도체 선두인 엔비디아에 이어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한 두 번째 반도체 기업이 됐다. TSMC는 AI 반도체 제조 주문을 싹쓸이하면서 올해 3분기에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4.2% 급증하는 등 ‘깜짝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경영진이 반성문까지 썼던 것과 대비된다. 삼성전자 주가는 최근 5만 9000원대로 내려앉은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국가 대항전으로 펼쳐지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주력인 D램 등 범용 메모리 분야에서는 수요 약화에 ‘반도체 겨울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중국 업체들이 고속 추격하고 있다. 첨단 AI 반도체 패키징 분야는 대만 TSMC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사법 리스크와 관료화된 조직 문화 때문에 대규모 투자 기회를 놓치고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인 맥쿼리가 ‘허약한 반도체 거인’이라고 꼬집었을 정도다. 이대로는 한때 반도체 1위 기업이었다가 몰락한 일본 도시바, 미국 인텔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우리 수출 경제의 주축이자 경제 안보와도 직결돼 있다. 미국·중국 등 주요국들은 수십조 원의 보조금을 뿌리고 그린벨트 해제 등의 파격적인 지원 조치를 취하면서 반도체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최근 ‘반도체 생태계 종합 지원 대책’을 발표했지만 저금리 대출 등 간접 지원에 그친 경우가 많아 경쟁국과 비교해 한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은 해묵은 ‘대기업 특혜’ 프레임을 접고 민관정이 원팀을 이뤄 반도체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총력전을 펴야 할 때다. 정부는 용수·전력 등 인프라 구축과 세제·재정·금융 등 전방위 지원을 서두르고 보조금 지급의 길도 터놓아야 한다. 삼성전자는 초격차 기술 개발과 핵심 인재 확보 등을 위해 뼈를 깎는 내부 혁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여야는 국회에서 ‘반도체지원특별법’과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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