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테러 당시 릭 레스콜라는 뉴욕 쌍둥이빌딩에 있던 모건스탠리 직원 2687명을 구했다. 모건스탠리의 보안 책임자였던 레스콜라는 수많은 반대에도 매년 네 차례씩 직원들과 함께 대피 훈련을 반복했고 결국 대규모 재난 가운데 놀라운 생존 결과를 기록했다. 이런 과정을 보더라도 모든 재난 상황에서 그저 ‘기적’만을 바랄 수는 없다.
반갑게도 이런 모범적 대응 사례를 우리나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초 경기도 동국대 일산병원과 인천 하나실버케어요양원에서 화재가 있었지만 인명 피해 없이 화재가 진압됐다. 간호사들과 요양보호사들의 신속한 초동 대처와 효과적인 환자 이송 덕분이다. 특히 동국대 일산병원에는 404명이 입원해 있었던 만큼 평상시 소방 훈련으로 단련된 직원들의 기민한 대응이 더 빛을 발했다.
다양한 재난 상황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는 더욱 집요하고 체계를 갖춰야 한다. 우리는 올해도 화재뿐만 아니라 폭염·호우 등 극한의 기후변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각종 재난의 위험에 노출됐음을 실감했다. 특히 올여름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빈번했다. 시간당 100㎜ 이상의 기습적인 폭우가 아홉 차례나 쏟아졌다. 9월 추석에도 폭염경보가 발령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어쩌면 통념적인 대응보다 극한의 상황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앞선 미국의 9·11테러나 우리나라의 병원과 요양원 사례에서 보듯이 재난 극복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실전과 같은 훈련이다. 위기 상황에서 초동 대응 역량을 높이고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2024년 하반기 재난 대응 안전 한국 훈련’이 전국적으로 펼쳐진다. 200여 개 기관이 주관하는 이번 훈련은 10월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진행된다. 전기차 화재와 다중이용시설 화재 상황은 물론 시기성을 반영한 인파 밀집 사고와 산불 대응 등의 훈련을 통해 대응 역량을 총체적으로 점검한다.
해마다 훈련을 반복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작동하는 재난 대응 능력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 반드시 개선할 점도 있다. 우선 훈련은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해야 한다. 실전과 같은 현장 경험이 쌓여야 예측 불가능한 재난에서 우리는 즉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니 그저 서류상으로 진행되는 훈련이나 담당 부서의 연례행사로 여겨서도 안 될 일이다.
두 번째로 인명과 재산 피해의 최소화라는 목표를 명확히 인식하고 훈련에 임해야 한다. 분명한 목표가 없는 훈련은 관행적으로 변하고 참여자의 긴장감도 낮아질 뿐이다. 과거의 재난기록을 복기하는 일도 중요하다. 해당 훈련과 비슷한 사례를 되짚어가면서 미흡했던 점을 찾아내며 훈련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는지를 계속 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반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어야 한다. 훈련은 단순히 행정기관의 몫이 아니다. 국민 각 개인은 그 가족과 지역사회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훈련 당일 현장을 찾아 훈련에 참여할 수 없다면 평소 주변의 위험 요소를 안전신문고로 신고하는 것도 실천의 좋은 대안이 된다. 국민 모두 안전에 초점을 맞춰 함께 다가설 때 그 효과는 배가될 수 있다.
재난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 기후변화가 극한으로 치달을수록, 예상을 뛰어넘는 사회 재난이 빈번해질수록 훈련은 더 실전처럼 그리고 공동체가 연대하며 실시해야 한다. 우리가 대비한 만큼 재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검증됐다. 이번 하반기 재난 대응 훈련이 우리 각자의 재난 대비 역량을 한 단계 높여 더 안전한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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