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국가인 몰도바의 유럽연합(EU) 가입을 결정하는 찬반 국민투표의 개표가 막바지를 향하는 가운데 여론조사를 뒤집고 반대가 앞서는 이변이 연출됐다. 친(親)유럽 성향인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은 친러시아 세력의 개입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며 불복하는 모습이다.
21일(현지시간) AP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날 EU 가입에 대한 국민투표에 대한 개표가 약 95% 진행된 상황에서 반대 52%, 찬성 47%로 반대표가 앞섰다. 여론조사에서는 EU 가입 찬성 여론이 63%로 앞섰던 것이 뒤집힌 셈이다. 다만 EU 가입 찬성 여론이 높은 해외 이민자 집단에서 이뤄진 투표의 개표는 아직 지연되고 있다. 또 이날 동시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산두 대통령이 친러 진영의 알렉산드르 스토야노글로 후보를 누르고 1위가 유력해졌으나 과반 확보에는 실패해 내달 결선 투표를 치를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투표를 통해 EU 가입 지지 여론을 확보, 친서방 정책 노선을 선명하게 펼치려 했던 산두 대통령은 결과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앞서 대통령은 2년 반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직후 2030년까지 EU 가입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으며 이번 투표를 통해 압도적 찬성 지지를 얻기를 바라왔다.
대통령은 예상치 못한 결과가 친러시아 세력의 개입 탓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대통령은 개표가 약 90% 진행된 시점인 20일 밤 늦게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국가의 이익에 적대적인 외국 세력과 함께 일하고 있는 범죄 집단들이 수백만 유로의 돈과 거짓 선전 등으로 우리나라를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어 “우리는 범죄 집단이 투표율을 흔들기 위해 30만 표를 매수하려 했다는 증거가 있다”며 “우리는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데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다. 산두 정부는 선거 전에도 러시아 지원을 받는 범죄 집단이 대선에서 친러시아 후보에 표를 주는 조건으로 금품을 제공해왔다고 주장해왔다. 러시아는 몰도바의 선거 개입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한편 이날 치러진 몰도바 대선과 EU 가입 국민투표는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을 띈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아왔다. 몰도바는 옛 소련에 속했지만 소련 해체 후 친서방과 친러시아 정권이 번갈아 들어서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은 이날 치러진 두 선거가 소련 해체 이후 몰도바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선거라며 “이번 선거를 통해 몰도바가 친서방과 친러 노선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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