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책 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이 그곳의 가장 큰 호수
고양이는 고양이 수염으로 알록달록 포도씨만 한 주석을 달고
비둘기는 비둘기 똥으로 헌사를 남겼다
물뿌리개 하나로 뜨락과 울타리
모두 적실 수 있는 작은 영토
나의 책에 채송화가 피어 있다
구두 한 짝이 유람선이 될 수 있다면, 깨진 조각 거울에 떠가는 구름에서 무한을 상상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얼마나 더 크고 신비로운 것이 될 것인가? 우리 모두 어느 날 엄지 공주와 검지 왕자와 같은 작은 사람들로 바뀐다면, 80억 인구가 사는 대륙과 섬들은 얼마나 광활할 것인가? 남자들에게 도토리 깍정이 모자에 콩깍지 바지가 유행을 하고, 여자들에게 동부 꽃 머리 장식에 달맞이 꽃잎 블라우스가 유행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다람쥐 마차를 타고, 비둘기 비행기를 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가 아니라 대인국 이야기다. <시인 반칠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