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이후에도 중국이 반도체 제조 공급망의 중심 기능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중국 의존도도 여전히 높다는 진단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2일 ‘반도체 5대 강국의 수출입 결합도 분석’ 보고서를 통해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대만·일본에 대한 중국의 반도체 수출입 결합도가 기준치를 웃돌았다”고 밝혔다. 수출입 결합도는 양국 간 무역 연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1보다 크면 무역 관계의 상호 보완성이 높다는 의미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과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 결합도는 2.94, 수입 결합도는 2.28에 달했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중국 거점의 글로벌 공급망 체인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뜻한다.
이런 가운데 중국 기업들의 추격은 거세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창신메모리 등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공격적인 생산 설비 확장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 D램 생산능력에서 중국 비중은 2022년 4%에서 올해 11%로 급증했다. 모건스탠리는 중국의 메모리 생산능력이 내년 말에는 16%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비해 K반도체는 삼성전자가 최근 ‘반성문’을 낼 만큼 상황이 어렵다.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밸류체인에서 소외되고 파운드리(위탁 생산) 경쟁력마저 약화됐다. WSJ가 “삼성전자가 메모리 시장의 선두 주자이지만 경쟁사에 뒤처지는 모습”이라고 우려했을 정도다. 거세지는 중국의 위협을 따돌리지 못하면 ‘반도체 강국’의 위상이 한순간에 흔들릴 수 있다.
K반도체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민관정이 원팀으로 반도체 산업 경쟁력 제고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기업은 과감한 투자와 혁신으로 초격차 기술 개발과 핵심 인재 확보에 전력투구하고 정부는 용수·전력 등 인프라 구축과 세제·금융 등 전방위 지원에 속도를 높이면서 보조금 지급의 길도 터놓아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말로만 ‘반도체 육성’을 외치지 말고 ‘반도체지원특별법’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의 조속한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투자 및 수출 시장의 다변화도 서둘러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인도·베트남·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 등 인도태평양의 ‘스윙 컨트리’ 등을 적극 개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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