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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하루] 중국의 문 처음 두드린 포르투갈 사절단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오늘날 세계 최대의 카지노 도시로 알려진 마카오가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교류와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하게 된 기원은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의 방문에서 말미암는다. 명나라 제10대 황제인 정덕제의 치세 13년째에 해당하는 1518년 음력 1월 2일(양력 2월 21일) 포르투갈에서 파견된 20여 명의 사절단이 인도와 믈라카를 경유해 광저우에 처음 도착해 입국을 신청했다.

당시 사절단을 이끈 인솔자는 토메 피르스(Tomé Pires)로, 중국 자료에는 ‘가필단말(加必丹末)’이라고 기록했다. 이는 포르투갈 국왕이 부여했던 항해 특권을 지닌 총독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카피탕-모르(Capitão-mor)’의 한어 음역이었다. 당시 명의 관리는 새로운 ‘오랑캐’ 포르투갈이 조공의 예법을 모를 뿐 아니라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교역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피르스 일행은 광저우 인근에 체류하며 뇌물을 이용해 관료들에게 진입을 끈질기게 요청했고 결국 1520년 1월 조정의 허락을 받아 수도 베이징까지 도착했다. 당시 조공 사절로 베이징에 머물던 조선인 신상(申鏛)은 포르투갈 사절 20여 명을 목도하고 그들이 금과 은을 많이 가져와 필요한 물건들을 거래하고 있었음을 왕에게 보고했다.



다만 포르투갈 사절단의 입경을 허락하고 회동을 준비하던 황제 정덕제는 난징으로의 순행에서 돌아오던 중 운하에 빠져 감기에 든 것이 화근이 돼 빠르게 사망했다. 명나라의 틀에 박힌 의례에 속박되기 싫었던 정덕제였기에 외국 사절들을 초대해 교류를 즐기려고 했지만 자유로운 성정으로 인한 자기 관리 실패로 공식 회동은 불발되고 사절단은 다시 쫓겨났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1553년 물에 젖은 화물을 말린다는 명분으로 마카오에 정박을 시도한 포르투갈은 뇌물을 활용해 1557년부터 마카오의 거주를 허락받았다. 이때부터 마카오는 유럽과 중국의 교류에서 중요 거점으로 성장했고 급기야 포르투갈은 1846년 마카오에 카지노 도박장을 처음 개설했다. 오늘날 화려한 카지노 도시 마카오는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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