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전력이 24일부터 산업용 전기 요금을 ㎾h(킬로와트시)당 평균 9.7% 인상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에 산업용 요금만 평균 4.9% 인상한 데 이어 이번에도 일반 가정과 소상공인 등이 쓰는 요금은 동결하고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기료만 올리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전력 사용이 많은 수출 대기업에 적용하는 전기료는 1㎾h당 16.9원(10.2%)이나 올린다. 역대 최대 인상 폭이다. 주택용·소상공인 전기요금을 지난해 5월 ㎾h당 8원 인상한 뒤로 1년 6개월째 동결 중인 것과 대조적이다.
한계에 봉착한 한전 경영을 정상화하고 안정적 전력망을 갖추려면 전반적인 전기료 인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인 가정용 전기요금이나 상업 시설용 요금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기업들에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주택용·일반용 요금 인상은 민생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며 “상대적으로 여력이 많은 수출 대기업이 고통을 분담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생을 핑계 삼지만 실상은 대기업을 희생양 삼아 선심을 쓰는 ‘전기료 포퓰리즘’이다. 정치 논리가 지배하는 ‘반쪽’ 요금 인상으로는 2021년 이후 41조 원의 누적 적자와 203조 원에 육박하는 부채를 떠안고 있는 한전의 경영 개선은 요원하다.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폭증하는 전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망 확충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의 ‘정치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취약해진 산업 경쟁력은 더 약화할 수밖에 없다. 불확실한 경영 여건 속에서 고전하는 우리 기업들이 전력난과 전기료 인상 부담까지 집중적으로 떠안아야 한다면 격화하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과거 전력 수급 불안과 고비용 구조 등으로 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산업 공동화(空洞化)에 시달렸던 일본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정부는 첨단 전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전반적인 전기요금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하기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국회는 미래 산업의 전력 수요 폭증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조속히 처리하는 등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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