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는 ‘방신실 신드롬’이 거셌다. 풀시드를 얻지 못해 대회 출전이 드문드문했는데도 ‘초장타’를 앞세워 시즌 초반 우승하면서 스스로 큰길을 개척했다. 데뷔 첫해 2승이나 거두고 맞은 두 번째 시즌. 방신실은 우승만 없을 뿐 준우승 세 번 등으로 24일 현재 상금, 대상(MVP) 포인트, 평균 타수 부문에서 모두 톱10에 올라 ‘2년 차 징크스’와 거리가 먼 모습이다. 드라이버 샷 거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위(평균 255야드). 2년 연속 ‘장타 퀸’이 눈앞이다. 장타로 ‘빵’ 떴지만 장타 너머 다양한 매력이 더 많은 방신실을 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현장에서 18문 18답으로 만났다.
-올 시즌 초반 흐름이 정말 대단했어요. 첫 두 대회 중 우승이 나왔다면 지금 많이 달라져 있을까요.
△시즌 첫 2개가 다 외국 대회였어요. 우승 경쟁을 하고 정말 잘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우승까지 가지는 못했죠. 거기서 퍼트가 좀 잘돼서 하나 우승이 나왔다면 더 좋은 흐름으로 이어가기는 했을 거예요. 하지만 우승을 놓쳐서 그 이후로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고 있고, 우승은 못 했지만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값진 결실을 볼 날이 곧 올 거라고 믿어요.
-장타로 이름을 알렸고 올해도 변함없이 장타를 자랑하고 있어요. ‘방신실은 장타다’ 이렇게만 알고 있는 골프 팬들에게 방신실 골프의 또 다른 매력을 소개해준다면요.
△귀여움? 농담이고요. 장타로 많이 알고 계시지만 쇼트 게임과 퍼트도 나름 잘하는, 그런 부분을 겸비한 선수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통 장타자는 쇼트 게임에 약하다고 하는데 제가 막 엄청나게 쇼트 게임을 잘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2년 차 시즌도 거의 끝나가요. 지난해는 하지 않던, 올해 새롭게 하는 루틴이 있나요.
△지난해에는 집에서는 퍼트 연습을 거의 안 했어요. 올해는 집에서 퍼팅 매트 깔아 놓고 아침저녁으로 30분씩 매일 연습하고 있어요. 올해 초반에 퍼트가 너무 안 돼서 시작한 거예요.
-그런 연습은 일반 아마추어 골퍼도 많이 하는데 어떤 매트를 추천할 수 있을까요.
△저는 8m나 되는 긴 매트를 써요. 그래서 중거리 퍼트도 연습할 수 있죠. 아마추어분들도 긴 매트로 연습하면 좋을 거예요. 저도 도움을 되게 많이 받았거든요.
-퍼트 연습 외에 잠들기 전이나 일어나자마자 꼭 하는 루틴이 있나요.
△있어요. 폼롤러로 하는 스트레칭이요.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잠들기 전에 30분씩 해요. 거의 매주 대회를 뛰다 보니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부상 방지를 위해서라도 스스로 몸을 꼼꼼히 풀어주려고 해요. 효과가 아주 좋답니다.
-폼롤러 스트레칭에 퍼트 연습까지 하려면 아침에 너무 바쁘겠어요.
△그래서 티오프 4~5시간 전에 일어나요. 다른 선수들은 보통 3시간 전에 일어난다고 알고 있고요. 늦은 오후 티오프일 때도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는 편이에요.
-어릴 때는 미대 진학을 꿈꿨다고 했었잖아요. 지금도 가끔 붓이나 펜을 드나요.
△지난해까지는 그랬는데 올해는 시간이 더 없는 것 같아요. 짬이 나면 책을 읽거나 일기 쓰거나 해요.
-매일 감사 일기를 다섯 줄씩 쓴다고요.
△네, 감사 일기장이 있고 일반 일기장은 또 따로 있어요.
-요즘 감사 일기의 내용은 어떤 건가요.
△시즌 막바지잖아요. 건강하게 잘 버티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런 내용들이에요. 밥을 잘 먹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등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들도 많아요.
-평소 나를 설레게 하는 몇 가지가 있다면.
△강아지 세 마리를 키워요. 그 아이들이랑 놀아주고 산책시켜줄 때가 가장 설레요. 처음에 한 마리로 시작했는데 ‘혼자면 외로울 거야’ 하는 마음에 한 마리씩 늘려왔어요. 대회장도 같이 다녀요. 호텔은 강아지 데리고 못 들어갈 때가 많아서 숙박 공유 플랫폼으로 집을 구해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같이 지내요.
-아버지는 몇 점짜리 캐디인가요.
△아, 이거 참…. 연세도 있으시고 무릎도 안 좋은데 골프백을 메주신다는 것만으로도 100점이죠.
-캐디의 ‘치명적 실수’도 종종 있지 않나요.
△많죠(웃음). 농담이고요. 물론 그린 경사를 반대로 보시거나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죠. 하지만 마지막에 결정은 결국 제가 하는 거니까 결과적으로 실수였다 하더라도 제 책임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2년 차인 김민별 선수와 우정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최근에 방 선수가 아쉽게 우승을 놓친 그 대회에서 김 선수가 우승했는데 둘의 진한 포옹이 눈에 띄더라고요.
△저도 열심히 잘했는데 민별이가 정말 너무 잘했잖아요. 지난해에 (우승이 없어서) 고생도 많이 했는데 너무 잘했다고 축하하면서 안아줬고 시즌 끝나면 꼭 맛있는 것 사라고 했어요.
-올해 퀄리파잉을 통해 미국 진출에 도전할 거라고 봤는데 하지 않았어요. 내년은 미국 가는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는 한 해가 될까요.
△올해 (세계 랭킹 상위 자격으로) 셰브런 챔피언십을 경험했어요. US 여자오픈이랑 다른 대회도 출전 기회가 있었는데 국내 대회와 겹치는 등 일정상 여건이 안 돼서 못 나갔고요. 미국 준비는 서서히 하기는 해야죠. 하지만 언제 나가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올 시즌 업그레이드됐다고 느낀 것과 오히려 뒷걸음질했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요.
△확실히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루키여서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게 있었거든요. 나름대로 노련해진 것 같아요. 전반적인 골프 기술 면에서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꾸준한 경기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드라이버 샷의 페어웨이 안착 확률이에요. 그래서 더블보기, 트리플 보기처럼 한 번에 많이 타수를 잃는 게 줄었어요. 쇼트 게임이랑 그린 적중도 좋아졌고. 뒷걸음요? 우승만 없을 뿐이지 그런 부분은 없다고 생각해요.
-겨울에 쉴 때 ‘이건 꼭 해볼 거다’ 마음먹고 계획 중인 게 있나요.
△여행요. 투어 뛰지 않는 일반인 친구랑 둘이 해외로 갈 거예요. 어디로 가냐고요? 비밀로 하고 싶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마법 같았던 순간은.
△지난해 첫 우승이요. 마지막 홀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할 때가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죠. 그런데 해본 적이 없으니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으니까 캐디 오빠가 ‘팔 들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색하게 팔을 들다가 이게 맞나 싶어서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했는데 그때 찰칵 찍혀서 기사에 많이 쓰였더라고요.
-지난해와 올해를 각각 키워드로 정리해본다면. 그리고 3년 차가 될 내년 키워드는 어떤 것이면 좋을까요.
△지난해도 감사, 올해도 감사예요. 지난해에는 ‘부분 시드’로 정규 투어 올라와서 기적적으로 2승이나 했잖아요. 올해는 또 지난해와 다르게 풀시드로 초반부터 매주 이렇게 대회를 뛸 수 있다는 게 늘 감사한 것 같아요. 내년요? 내년 키워드는 ‘대박’이면 대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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