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4일 대통령 가족의 비위 등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도입을 둘러싼 당내 논란에 대해 “당 대표가 법적·대외적으로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한다”며 “특별감찰관 추천과 임명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가 추진하는 특별감찰관을 두고 추경호 원내대표가 ‘원내 사안’이라고 제동을 걸자 당 대표의 권한 범위까지 거론하며 반격한 것이다. 추 원내대표는 친한계 의원들의 거센 요구에 “국정감사가 끝난 뒤 의원총회를 열어 논의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당 정체성과도 연결된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했다.
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특별감찰관은 지난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던 것이고 우리는 문재인 정권보다 훨씬 나은 정치 세력”이라며 특별감찰관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대통령 가족 등의 비위 행위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2016년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이 사퇴한 뒤 문재인 정부가 후임을 임명하지 않으면서 8년째 공석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과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연계하면서 또다시 임명이 미뤄지고 있다. 그러던 와중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최근 여권 내에서도 특별감찰관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 여사를 겨냥한 특별감찰관 카드를 전날 공개적으로 꺼내든 한 대표는 ‘국민 공감’을 앞세워 대통령실을 거듭 압박했다. 그는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이 특별감찰관 추천의 전제 조건이라는 입장은 국민들의 공감을 받기 어렵다”며 “대통령 주변 관리를 막기 위해 정치 기술을 부리는 것으로 오해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특별감찰관 추천은 원내 사안’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그는 “원내든 원외든 총괄하는 임무를 당 대표가 수행하는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추 원내대표가 전날 “의원총회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견제구를 날리자 당헌상 당 대표 권한을 근거로 반박한 셈이다.
친한계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전날 국민의힘 의원들이 참여하는 단체 대화방에는 특별감찰관에 대한 추 원내대표의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는 친한계 의원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그러자 추 원내대표는 이날 대화방에 “국감을 다 마치고 의원들의 의견을 듣는 의원총회를 열겠다”고 공지했다. 다만 그는 특별감찰관을 둘러싼 당내 갈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추가 확전을 우려한 듯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대통령실은 “북한 인권 문제는 당의 정체성과도 연결된 문제인데 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가벼운 사안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며 한 대표를 향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특별감찰관을 둘러싼 당내 1·2인자의 신경전이 고조되면서 계파 간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친한계 김종혁 최고위원은 “특별감찰관 도입을 마냥 회피한다면 민심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윤계 권성동 의원은 “당 대표가 원내대표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독선과 독단의 정치”라고 날을 세웠다.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다음 달 1일 국정감사 이후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특별감찰관 추천을 놓고 표결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표결 결과에 따라 한 대표와 추 원내대표 중 한 명은 정치적 치명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한 대표는 이날 국감이 열리는 9개 상임위원회 회의장을 찾아 의원들을 격려하며 원내 관계를 강화하는 행보를 했다. 그는 25일에는 보수 텃밭 대구를 찾아 지지층 결집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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