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불법 번식장에서 강아지 575마리를 구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숫자도 숫자지만, 이 번식장을 둘러싼 반려동물의 잔혹한 현실이 충격적입니다. 다소 끔찍한 내용임에도 반드시 전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입니다.
지난 17일 부산 강서구 낙동강변의 불법 번식장. 동물단체 활동가 등이 10시간 동안 575마리를 구조했습니다. 4단으로 쌓아 올린 케이지로 가득찬 미로 같은 공간에 다양한 품종견들이 갇혀 있었고, 당연히 최소한의 돌봄이나 위생을 챙긴 흔적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심각한 치아질환, 안구질환, 피부병을 앓고 있었고 탈장, 실명 상태의 개들과 아예 다리로 설 수조차 없는 개들도 있었습니다.
출산을 앞뒀거나 막 출산한 어미견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들은 없었습니다. 현장에서는 마취제, 안락사 약병도 발견됐습니다. 수의사도 아닌 번식장 주인이 개를 팔기 위해 동물학대와 살해와 범법을 저질러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들입니다.
문제의 번식장은 그동안 동물학대·불법 영업·건축법 위반 등 여러 차례 법적 제재를 받았는데도 25년 간이나 불법으로 운영돼 왔습니다. 그래서 동물단체들은 지자체의 행정 태만도 별도로 고발할 예정입니다.
이 처참한 곳에서 번식업자는 불법으로 개들을 경매장에 출하해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에 번식업이 허가제로 전환되면서 직접 출하가 어려워지자, 인근 김해에서 따로 소규모 번식장 허가를 받은 후 부산 번식장의 개들을 신분 세탁해서 김해의 모 경매장에 팔아 넘겨왔습니다. 몸통은 부산의 불법 번식장인데, 김해 번식장 허가를 내세워 불법 판매를 계속해 온 겁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번식업자가 개들을 신분 세탁해서 판 김해 경매장은 작년에 시끌시끌했던 곳입니다. 모 교수(무려 반려동물과)가 경매장 업주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 교수는 교수직에서 파면됐지만 그가 소속된 경매장을 비롯한 동물 판매의 카르텔은 건재합니다.
경매장을 거친 개들은 펫숍으로 보내집니다. 깨끗하고 귀여운 펫숍의 강아지들이지만, 그 뒷편에는 이런 커다란 어둠과 불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사지 말고 입양하라'는 슬로건이 여전히 너무나 중요하고 의미 깊은 이유입니다.
구조에 참여한 동물단체 연합 '루시의 친구들(너와함개냥, 동물권자유너와,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댕댕이꽃쉼터, 도로시지켜줄개, 애니밴드, 엔젤프로젝트, 위액트, 유엄빠, 코리안독스, 코카프렌즈, 티비티레스큐, 퍼그레스큐오브코리아, 함께할개사랑할개, 행복한유기견세상, CRK, LCKD, KK9 외 개인 구조자 2인)'은 경매장 폐지, 동물 판매에 관한 법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2008년 동물생산업을 개정하고 정부가 규제하겠다고 했지만 번식장 동물학대는 여전합니다. 반려동물을 원하는 사람들이 유기동물 보호소를 우선 찾아가도록, 동물을 사지 않도록 더 강한 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미 영국, 미국 뉴욕주 등 펫숍에서의 동물 판매를 금지한 사례가 있습니다. 독일처럼 판매 자체는 가능하지만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서 실질적으로 펫숍 운영이 어려운 곳도 있습니다.
이번에 구조된 동물들이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행복을 찾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관련기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