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도 제한적으로 쓰이던 자폭드론의 가치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통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전쟁 초기 미국의 대표적인 자폭드론인 ‘스위치블레이드’가 가끔 보이는 수준이었다. 스위치블레이드는 2012년부터 미 육군과 해군 등에 배치된 무기로 오로지 미군만 사용을 하다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에 투입됐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순항미사일을 대체할 정도의 위상을 확보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자체 생산을 통해 러시아의 모스크바까지 타격하는 자폭드론을 핵심 전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맞서 러시아도 이란산 샤헤드 자폭드론을 도입해 우크라이나의 주요 시설 파괴와 공습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전장에서 자폭드론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 실체에 대해 평가했던 미국 해병대 지휘관의 어록이 최근 회자되고 있다. 2023년 당시 미국 해병대 사령관인 데이비드 버거 해병대 대장은 ‘자폭드론’의 가치에 대해 “보병이 처음으로 포병 사거리 너머 표적까지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게 됐다. 지상군의 손에 항공력(power of air wing)이 주어진 것”이라고 했다. 지상군 일개 보병이 공격헬기·공군기를 보유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는 의미로 상당한 높게 평가한 것이다.
데이비드 버거 전 해병대 사령관의 평가는 최근 전장에서 자폭드론의 위력을 제대로 꼬집은 셈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역사상 ‘자폭드론’이 가장 대규모로 운용된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는 데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앞으로 현대전에서 ‘자폭드론’ 핵심 전력
실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자폭드론은 피닉스 고스트(Phoenix Ghost)·스위치블레이드(Switchblade)·알티우스(Altius) 등 전쟁 초기에 활용될 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우크라이나는 자체적으로 자폭드론을 대략 생산해 주력 무기체계로 운용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이란의 샤헤드(Shahed)-136을 대량 도입해 우크라이나 공습에 투입하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는 자국산 자폭드론 란셋(Lancet)의 생산량도 3배까지 증대했다.
바야흐로 앞으로 벌어질 현대전에서 자폭드론, 즉 공격형 무인기(드론)은 대세이자 핵심 전력이 될 수 밖에 없다. 현재까지 자폭드론을 만들 수 있는 실상을 어떨까. 미국 바드 대학(Bard College)의 드론 연구센터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자폭드론이 2017년 8개국·35종에서 2023년 32개국·210종으로 급증했다. 반면 한국군은 이러한 세계적인 발전 추세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아직 보유한 한국산 자폭드론은 ‘0개’로, 이르면 올해 연말에나 한국산 자폭드론을 보유·운용할 예정이다.
세계 최초의 자폭드론은 이스라엘이 1989년 제작한 무인기 ‘하피’(Harpy)다. 1982년 이스라엘군이 베카 계곡의 공중전에서 적 방공체계 제압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개발하기 시작했다. 적 방공 레이더를 파괴하기 위한 일종의 플랫폼으로, 정찰드론에 전자파 탐지 센서와 탄두를 장착했다. 운용 방식은 지상 발사대를 떠난 자폭드론이 적 방공기지의 상공을 수 시간 동안 선회하다 적 레이더의 전자파를 감지하면 이를 역 추적해 직접 충돌·파괴하는 방식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전자시스템·2차 전지·첨단 소프트웨어가 발전하면서 자폭드론의 소형화, 지능화, 파괴력은 대폭 강화됐다. 당장 이란의 샤헤드-136이 대표적이다. 제원은 동체 길이 3.5m, 날개폭 2.4m, 중량 200㎏에 불과하지만 탄두는 30∼50㎏, 비행거리는 2500㎞ 달한다. 특히 성능 대비 단가는 2만 달러(2780만 원)에 불과하다.
미국은 한 발 더 나아가 성능을 완전 업그레이드 했다. 크기를 줄이고 광학·적외선 센서·비행제어장치·데이터 링크까지 장착했다. 이 덕분에 ‘이동표적’까지 타격하는 게 가능해졌다. ‘스위치블레이드 600’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전기모터 장착으로 소음도 거의 없어 적의 요격 가능성도 최소화했다. 제원을 보면 길이 1.3m, 폭 1.8m, 중량 23㎏에 이른다. 탄두 3∼5㎏, 비행거리 90㎞로서 이제는 적 전차까지 파괴가 가능할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러시아는 자폭드론의 전략 개념을 바꿔 저가의 순항미사일 처럼 운용 중이다. 다만 아직은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못해 내연기관 엔진을 장착한 탓에 비행 소음이 크고, 항법·유도장치의 한계로 전력 인프라 같은 고정표적만 타격할 수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을 통해 자폭드론의 유효성이 확인되면서 미 육군은 자폭드론을 ‘지상군 보병부대’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7월에 발표한 ‘저고도 추적·타격 무기(LASSO: Low Altitude Stalking and Strike Ordnance)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보병전투여단(IBCT) 예하 ‘대대’ 단위까지 최신 자폭드론을 전력화하는 개념이다.
이에 반해 한국군의 자폭드론 운용은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군이 보유한 자폭드론은 모두 이스라엘 제품으로 적 지휘부의 암살용 소량에 불과한 수준이다. 참수작전부대로 알려진 육군 특수임무여단에 배치된 ‘로템-L’과 공군의 ‘하피’ 등 극소수다.
세계 각국의 자폭드론이 최소 200여 종이나 넘지만, 개발을 완료한 국산 자폭드론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운용범위를 ‘특수 목적’으로 한정한 탓이다. 여기에 소량이지만 드론작전사령부에서 운용하는 ‘S-2’라는 이름으로 배치된 자폭드론, ‘S-4’라는 이름의 튜브발사용 공격드론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이 우리 군은 폴란드산 소형 자폭 드론인 워메이트 200대를 구매 계약한 이후 국산 자폭드론 수십 대도 연내 실전 배치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현재 국산 자폭드론 실전 배치를 위한 시험 평가 및 계약 절차를 밟고 있다. 아울러 국산드론 성능 개선 사업과 함께 향후 배치 규모도 늘려갈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연내 국산 자폭드론 실전 배치
지금까지의 드론 조종은 전적으로 드론 조종사의 기술력에 좌우됐다. 예를 들어 빠른 속도로 도망쳐 건물 안에 숨어든 적군에게 날렵한 기동으로 따라붙어 자폭드론을 날려보내는 기술은 노련한 조종사가 아니라면 흉내를 낼 수가 없다.
그러나 올해 초 러시아가 전투용 드론의 메인프로세서에 인공지능(AI)을 탑재하면서 드론전의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AI를 이용하면 가장 기동이 어려운 마지막 몇 초 동안의 비행을 자동으로 조종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반격에 우크라이나군도 대응에 나섰다. 당장 자포리자주 전선에서 러시아 병사에게 날아든 우크라이나군 118기계화여단 소속 드론 영상을 보면 조종 주체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공지능(AI) 이었다. ‘신형 AI 유도 드론’의 시험 비행으로, 테스트 대상이 된 러시아 병사는 안타깝게도 눈 깜짝할 새 죽음에 이르렀다.
최근 들어 AI의 ‘자율성’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방어, 탐색, 추적, 데이터 수집, 분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군사 영역에서 적용되는 상황이다. 미 국방부는 최근 AI가 결합된 자율 무기체계를 “활성화되면 인간의 개입 없이 목표를 선택하고 공격할 수 있는 무기 시스템”이라고 규정하며 활성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목표물을 공격하기로 스스로 결정하는 무기체계의 등장이라면서, 1945년 원자폭탄 발명을 도운 과학자의 이름을 따 “AI의 ‘오펜하이머 모멘트’가 도래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우려는 이미 현실화 되고 있다. AI를 장착한 무기체계 도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통해 가속화됐다. 미국의 국방 전문 AI 기업 팔란티어에 따르면 AI 도입으로 우크라이나 살상용 드론의 정확도는 지난해 50%에서 올해 80%까지 올라갔다.
팔란티어 AI가 내장된 ‘세이커 정찰 드론’은 10㎞ 범위에서 군인·탱크·차량 등을 식별하고 언제, 어떤 무기로 공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지 분석하며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스라엘군도 마찬가지다. ‘라벤더’라는 이름의 ‘AI 타기팅 소프트웨어’를 활용 중이다. 하마스와 연계된 무장조직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PIJ)’ 구성원을 군중 속에서 식별하는 게 주 임무다. 특정인이 PIJ 전투원일 가능성을 1부터 100까지의 점수로 평가해 점수가 높은 개인을 자동으로 암살 대상자로 분류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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