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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은 어떻게 상품이 됐을까?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학술대회

26일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에서

화랑으로 본 현대미술시장의 변모

권행가 미술사학자가 26일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 '1970년대 한일 화랑 교류'를 명동화랑과 동경화랑을 중심으로 연구해 발표하고 있다.




“국립미술관 전시와 같은 공적 미술 제도가 아직 온전히 확립되지 않았던 그때, 현대화랑과 같은 미술시장의 사적(私的) 미술 제도는 무엇이 당대 소비자(대중)의 기호인지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미술 작품에 시장성의 가치를 최초로 부여했다.” (조수진 근현대미술연구소 상임연구원)

가나화랑은 1980년대에 자유주의적으로 유연화되기 시작한 한국 경제의 변화의 가운데에서, 미술시장의 제도 변화에 최대한 빠르게 부응하여 작품의 수요와 공급을 매개하며 양자를 양적으로 증대시켜왔다.” (서유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회장 신수경)가 ‘미술작품이 상품이 될 때:한국 현대 미술시장의 역사와 현재’를 주제로 26일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에서 2024 가을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미술작품이 상품이 되는 사회적 과정 속에서 이를 매개하는 미술시장의 행위자로서의 ‘화랑(갤러리)’을 본격적으로 주목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권행가 미술사학자는 명동화랑과 동경화랑을 중심으로 ‘1970년대 한일 화랑 교류’를 분석해 주목 받았다. 그는 “1970년대 단색화의 발생 배경과 관련해 명동화랑과 동경화랑이 늘 다루어지나 미학적 관점이 아닌 미술시장의 관점에서는 크게 주목된 적이 없다”면서 “명동화랑은 (1970~1975년) 짧은 운영기간 동안 80여건이 넘는 전시를 개최했는데, 그동안 주로 전위미술가들과의 관련성 하에 거론된 전시들 이외에 고서화전, 판화전 등을 통해 동경화랑과의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하며 한국에서의 대중적 미술시장 개척을 이뤄갔다”고 짚었다.



권 교수의 연구발표에 따르면, 일본은 본격 고도경제성장기에 들어선 1960년대 유례없는 서양화 호황기를 맞았다. 일본 미술시장이 대중적으로 확대돼 수요가 급증하고 회화 가격이 급상승하자 일본 화상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국 작가로 눈을 돌리면서 1970년대 한일 화랑교류가 시작됐다. 동경화랑의 야마모토 다케시 사장은 이우환을 통해 박서보를 만나면서 한국 미술계와 인연을 맺었다. 김문호 대표가 1970년 12월 설립한 명동화랑은 처음에는 대관을 겸해 고미술 거래를 알선하다 동경화랑과 교류하면서 당대의 젊은 전위예술가 전시를 기획하고 대중화된 판화시장에 도전했으며, 일본에 조선 민화와 한국 전위미술을 소개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학술대회 1부가 화랑의 활동을 추적했다면 2부에서는 국가와 미술시장의 관계를 비롯해 21세기 현재를 성찰했다. 황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1950년대 후반 국가와 미술시장’을 ‘공보실의 한국의집 운영과 서화휘호회 개최를 중심으로’ 살펴봤고,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부여 규암리 금동보살입상의 인식과 수용’을 통해 ‘미술시장, 상업성, 애국주의의 착종’을 분석했다. 주연화 홍익대 교수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미술시장의 글로벌화, 그 양상과 한계’를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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