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공약은 중산층 지원과 같은 미국 내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집중된 반면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트럼프 전 대통령은 10% 보편관세 등 세계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노믹스2.0이 현실화할 경우 세계경제는 인플레이션부터 통화정책, 달러의 향방까지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안갯속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관세와 미중 관계 등 굵직한 공약에 가려져 있지만 트럼프 2기 체제의 핵심 이슈 중 하나는 이민정책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농장부터 식당, 건설 현장까지 일손이 부족해 서비스 요금이 오를 때 이를 진정시킨 원동력은 불법 이민자들의 노동력 공급이었다. 이민자들이 최근 2년간 미국 경제의 경로와 연준의 통화정책을 바꿨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민정책은 사회문제보다는 국제 경제 이슈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양측의 시각차가 선명하게 갈린다. 해리스는 “열심히 일하는 이민자들의 시민권 획득 경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반면 트럼프는 “역사상 최대 규모로 추방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불법 이민자 추방은 130만 명을 돌려보낸 1954년의 ‘웻백 작전(Operation Wetback)’이다. 국경순찰대와 경찰 등이 도로와 기차를 봉쇄하고 농장과 사업장을 기습해 불법 이민자를 색출해 멕시코로 추방했던 정책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웻백 작전’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의 공언대로면 그의 임기 내 최소 130만 명의 불법 이민자가 추방될 것이다. 추방 목표가 수백만 명 수준을 넘어설 수도 있다. 현재 미국 정부와 싱크탱크들은 미국 내 불법 이민자 수를 최소 870만 명에서 최대 17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공화당은 최대 3000만 명이라고 주장한다.
대규모 추방은 노동력 상실과 높은 인플레이션,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 뉴욕 뉴스쿨의 국제관계학 교수인 니나 흐루셰바는 “누가 농산물을 수확하고 병원과 요양원의 침대보를 교체할 것인가”라고 따져물었다. 공화당은 불법 이민자들이 떠나고 남은 일자리는 미국 토박이들의 몫이 될 것이라 주장하지만 미국인들이 기꺼이 3D 업종을 감당할지는 의문이다. 팬데믹 이후 일손 부족 사태에서 보듯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외려 불법 이민자들이 줄면 이들의 소비도 사라지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기존 일자리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만약 830만 명의 불법 이민자가 쫓겨난다면 2026년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3.5%포인트 추가 상승한다고 짚었다. 축출이 없었을 때 물가 상승률이 2%라면 추방으로 5.5%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 차질로 성장도 멈출 수 있다. 연구소는 같은 시나리오에서 트럼프 재임 4년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고 추산했다.
4년 동안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정체되고 인플레이션까지 겹친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미국의 저성장이 세계 각국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이다. 트럼프의 이민정책이 세계경제를 불확실성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이유다. 설상가상 관세정책까지 결합하면 트럼프 2기는 세계경제의 암흑기가 될 수 있다. 물론 관세나 이민 공약이 백인 노동자 계층을 잡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고 정책 실행까지 이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그가 이민자를 두고 “해충(vermin)” “미국의 피에 탄 독”이라 표현하는 것을 보면 실행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불확실성의 파고 속에서 대한민국은 스스로 안갯속을 헤쳐나갈 대응 방안을 시나리오별로 구축해야 한다. 위기 대응 시나리오에 미국의 이민정책 변수가 포함되지 않으면 반쪽짜리 지도에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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