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도밍고 공원 길모퉁이 곳곳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동네 야구 경기에 몰두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마추어치고는 수준급 실력을 만날 수도 있고 이제 막 야구를 시작한 코흘리개 소년들의 열정도 종종 눈에 띈다. 평범해 보이던 옆집 청년이 하루 아침에 황금알을 낳는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는 야구 대국, 도미니카공화국의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유명 야구 선수로는 미국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데이비드 오티즈, 아드리안 벨트레 등이 있다. 이들은 고국에서 선망의 대상이자 영웅 대우를 받고 있다.
올 해 현역 메이저리거의 약 11%인 145명이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다. 지난해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매니 마차도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11년간 총 3억 50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지난해 총수출이 119억 달러임을 고려하면 이들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가히 놀랄 만하다.
올 시즌 한국프로야구(KBO)에서 활약하는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도 5명이다. 반대로 2017~2018 겨울 시즌에는 우리의 김병현·강정호가 도미니카공화국 프로리그에서 잠시 활약하기도 했다. 현지 선수들 일부는 지금도 한국 선수들과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수만 리 떨어진 양국을 잇는 핵심 가교로서 야구의 존재 가치를 엿볼 수 있다.
1970~1980년대 초 수많은 한국 섬유·직물 관련 중소기업이 도미니카공화국에 진출해 미국으로 패션 의류와 인형·모자·가발 등을 수출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지리·전략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한 결과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중남미 지역의 임금 상승은 자연스레 한국 기업의 발길을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돌리게 해 지금은 대략 10여 개의 기업과 600명 내외의 교민만이 남아 있다. 1000여 명이 넘던 과거 교민 사회의 전성기를 추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미국과 중국 간 경제 전쟁과 더불어 글로벌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경제와 안보의 융복합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다. 전 세계 경제·안보의 터닝포인트에서 도미니카공화국은 한국에게 과거의 영화를 재연할 수 있는 또 다른 전략적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해외 수출 기업이 주로 입주해 있는 도미니카공화국 수출 자유 구역의 올 상반기 수출은 지난해보다 6.8% 증가한 42억 5846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70%가량이 북미 시장으로 나가며 주요 품목은 의료기기와 담배·의류 등이다.
어느새 도미니카공화국은 중남미에서 7위의 경제 규모를 달성했다. 북미 시장과 남미 신흥 시장 진출에 용이한 지리적 장점에 힘입어 지난해 도미니카공화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사상 최대인 43억 9000만 달러에 달했다. 2022년과 비교하면 7.1% 성장해 다시 한 번 경제적 잠재력을 입증한 셈이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지리적 이점은 북미·유럽 등 경제 블록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수출자유구역(Free Zone) 내 수출 기업 설립 등으로 이어지며 연일 주목받고 있다. 우리도 이에 발맞춰 지난해 4월 도미니카공화국의 라켈 페냐 부통령 방한 당시 ‘한-도미니카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를 체결하는 등 경제협력을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북미와 중남미 시장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카리브 중앙에 위치한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프렌드쇼어링(우호국 간 공급망 구축)’이 불붙고 있다. 이에 발맞춰 현지 공관도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개척을 적극 뒷받침하고 있따. 1970~1980년대 도미니카공화국 진출의 영광이 재연될 날이 머지않았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메이저리거의 산실인 도미니카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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