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진행된 일본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과반의석(465석 중 233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이시바 시게루 내각이 추진했던 예산 등 각종 정책과 정상외교 일정의 스텝이 꼬이게 됐다. 이시바 총리와 여당은 당장 30일 이내에 소집될 특별국회에서 총리 지명 투표를 통과시키기 위해 ‘과반의원 찬성표’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일본 정치가 당장 내부 구심점 찾기에 주력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일관계도 큰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28일 일본 주요 언론에 따르면 전날 실시된 총선에서 자민·공명 양당은 선거 전 합계 279석에서 64석이 줄어든 215석을 얻는 데 그쳐 과반의석을 밑돌았다. 여당이 과반 미달을 기록한 것은 2009년 민주당에 정권을 빼앗긴 뒤 15년 만이다. 이시바 총리가 목표로 내걸었던 ‘여당 과반의석’은 자민당이 비자금 스캔들 문제로 공천 배제했던 후보를 추가 공인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도 채울 수 없는 상태다.
총리 지명할 특별국회…과반 정당 없어 ‘내편’ 만들기 치열
입헌민주 “노다 대표에 표 몰아줘라” 각당에 협조요청키로
입헌민주 “노다 대표에 표 몰아줘라” 각당에 협조요청키로
정치권의 관심사는 조만간 소집될 특별국회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특별국회는 국회 중의원 해산·총선 후 새로운 총리를 뽑기 위한 국회로, 일본 헌법 54조는 중의원 선거 투표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국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총리 지명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은 국회의원이 총리로 선출되는데, 과반수를 획득한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상위 2명이 결선투표를 진행한다. 현재로선 여당(자민·공명)도,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도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 총리 지명에는 ‘내편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여당은 정권 유지를 위해 연립체제 확대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이시바 총리가 연임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자·공 연합의 연립 범위를 확대해 일본유신회나 국민민주당 쪽에 연정 의사를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유신회와 국민민주당은 현재로선 정책 부분 협력엔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연정 참여’는 부정하고 있어 쉽지 않은 논의가 될 전망이다. 이번 선거에서 기존 98석을 뛰어넘는 148석을 달성한 입헌민주당도 ‘정권교체’를 내걸고 다른 야당들에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입헌민주당은 이날 당 집행부 회의에서 “특별국회 총리 지명 선거 때 노다 요시히코 대표에게 투표하도록 각 야당에 요청한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이시바 법안·예산, 11월 해외일정 차질우려
“바이든과 첫 대면 정상회담 노렸는데…”
“바이든과 첫 대면 정상회담 노렸는데…”
취임 직후 각종 법안 추진과 정상외교 일정을 세워뒀던 이시바 총리의 계획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시바 총리는 이번 선거 기간 새로운 경제 대책의 재원이 될 13조엔(약 117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안 편성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연말에는 내년 예산안과 세제개정 기본방향 결정도 앞두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전날 개표 속보 방송을 본 뒤 “경제 대책이나 추경안 심의에 영향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상외교 일정도 스텝이 꼬일 수 있다. 현재 자민당은 특별국회 소집일을 다음 달 7일로 검토 중인데, 이는 이시바 총리의 해외 일정을 고려한 것이다. 이시바 총리는 11월 15~16일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같은 달 18~19일 브라질에서 예정된 주요 20개국(G20)의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두 국제회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문할 가능성도 있어 이시바 총리로서는 취임 후 첫 대면인 미일 정상회담도 모색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시바 총리는 다음 달 5일 미국 대선 이후 당선인이 결정되면 취임식 전 미국을 방문해 ‘사전 관계 다지기’에 나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들 일정에 적절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특별국회 일정과 총리 지명 선거가 늦춰질 경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자리 지켜도 ‘당내 입지’ 더 좁아져
한일관계 소신 발언·정책등 진전 기대요원
한일관계 소신 발언·정책등 진전 기대요원
이시바 총리가 총리 지명 선거를 통과한다 해도 당내에서 ‘책임론’에 흔들리며 자기 색깔의 정책을 추진할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이 경우 가장 우려되는 영역이 한일관계다. 역사인식이 비교적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시바 총리지만, 이번 선거로 당내 구심점이 흔들린 상황에서 반(反)이시바 세력, 특히 옛 아베파를 중심으로 한 강경 보수인사들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크다. 당내 기반이 약해 취임 초부터 ‘이시바표 정책’의 정체성이 퇴색하고 말 바꾸기로 일관했다는 비판에 노출됐던 만큼 선거 참패로 입지가 더욱 좁아진 이시바 총리가 역사와 관련해 소신 발언을 한다거나 한층 진전된 한일 관계를 추진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일본 정치인들이 지지율 하락 시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들었던 ‘우경화’, ‘역사 관련 강경 발언’ 같은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여당의 견제 대상으로 세(의석)를 크게 불린 입헌민주당의 노다 대표가 반한(反韓) 인사로 분류된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노다 대표는 총리 재임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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