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뜨는 실종 안내 문자를 가끔씩 유심히 쳐다본다. 열에 아홉은 나이가 많은 분이다. 혹시나 치매로 집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지, 가족들은 또 얼마나 마음을 졸일지 싶은 생각에 쉽사리 눈을 떼기 어렵다.
‘2023년 대한민국 치매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 수는 900만여 명이며 90만여 명이 치매를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인구 10명 중 1명 꼴로 이 질환을 앓는 셈인데 치매 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속도가 가파르다 보니 2050년이면 315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치매를 국가가 관리해온 편이다. 2008년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2011년 치매관리법을 제정했다. 2017년부터는 치매국가책임제를 시행하는 등 지속해서 치매 대응을 위해 노력해왔다. 치매 조기 검진과 예방을 위해 전국에 256개에 이르는 치매안심센터를 전국에 설립했다. 치매 환자를 위한 장기 요양시설과 치매 전문 병동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치매 환자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여전하다. 치매의 특성상 24시간 돌봄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 위주의 돌봄 시스템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영유아 돌봄에 비해 지원도 부족하다.
이는 비단 치매 환자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보다 더 빠르게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산, 즉 ‘치매머니’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이 금융기관에 예치해둔 돈이나 부동산이 사실상 동결되면서 돈이 돌지 않고 있다. 2018년 일본 제일생명경제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일본 치매 환자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한화로 1560조 원에 달했다. 2030년에는 일본 가계 전체 금융자산의 10% 수준인 23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둔 한국도 곧 겪을 문제이다.
치매 대책은 의료·복지·인권 측면을 모두 아울러야 한다. 의료 측면에서는 치매에 대한 조기 진단 및 치료가 중요하다. 복지 측면에서는 환자와 환자 가족에 대한 신체·정서·경제적 부담을 낮추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첫 걸음은 ‘치매 환자의 인권’이다. 치매 환자의 인권을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이 ‘치매’ 명칭을 바꾸는 것이다.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가 결합된 ‘치매’는 환자의 존엄성을 해친다. 해당 질병에 대한 거부감을 높여 조기 진단을 방해하는 문제도 나타난다. 이에 프랑스와 일본·대만 등 주요 국가는 ‘신경퇴행성 질환’ 등으로 이름을 바꾸는 추세다.
치매 환자는 판단력이나 의사 결정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함부로 대하기 쉽다. 그래서 더욱 치매 환자의 인권과 존엄성에 근거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인식 개선에 나설 필요도 있다. ‘치매’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에서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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