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자본확충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전세사기 여파 등으로 치솟은 대위변제액을 감당하기 위한 조치가 자칫 전세대출 확대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엇박자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전날 HUG에 신종자본증권 발행 일정을 연기하라고 통보했다. 당초 HUG는 NH투자증권을 발행 주관사로 선정하고 이날 5000억 원 규모 채권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예정이었다.
HUG 관계자는 “채권 발행을 위한 절차가 중단돼 사유 등을 파악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금융당국과의 갈등으로 발행이 연기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HUG가 자본 확충을 통해 전세보증보험을 확대한 뒤 또다시 전세 사기 문제가 불거질 경우 신종자본증권을 통해 자금을 추가 조달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또 “자본 확충을 마친 HUG가 전세보증보험을 확대하게 되면 자칫 전세자금대출을 확대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시장에 줄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세보증보험확대가 전세자금대출 확대의 시그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통상 세입자는 금융권으로부터 전세가액의 일정 비율 안에서 대출을 받아 임대인에게 지급한 뒤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전세대출은 금융권이 정한 한도 내에서 받는 것일 뿐 전세보증보험이 확대된다고 전세대출 금액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국토부는 현재 절차상 문제가 생겨 일정을 단순 변경했으며 목표로 했던 HUG의 자본확충을 위해 연내 발행을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HUG가 자본 확충을 통해 전세보증보험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종자본증권을 포함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 주택도시기금법상 HUG의 보증 배수는 자본금의 90배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2022년 이후 불거진 전세사기 여파 등으로 HUG의 대위변제액이 늘면서 자본금도 감소하고 있다. HUG는 올해 당기순이익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3조 8324억 원 적자로 예상하고 있다.
신종자본증권은 통상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길어 회계상 영구채로 분류된다. 국토교통부에서 지난해와 올해 총 4조 4000억 원의 현물출자를 받았음에도 전세사기 대위변제액이 급증하면서 자본금이 줄어들자 재무 구조 개선에 나선 것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HUG의 자본금은 지난해 말 기준 2조 995억 원으로 전년 대비 3조 4921억 원 쪼그라들었다. 올해도 약 7조 3000억 원에 달하는 전세사고 보증금을 내줘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HUG는 올해 첫 채권 발행 이후에도 추가 자금 조달을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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