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신은 40여 년간 아르헨티나에서 창작 활동을 해 온 여성 조각가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반평생을 보낸 그의 작품은 아흔은 앞두고 고국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남미의 나무’를 깎아 만든 그의 이국적인 조각 작품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은 이름부터 ‘다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타인과 다른 생각이 우리를 성장시킨다”고 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다름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오히려 그의 삶과 우리의 예술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김윤신뿐 아니라 미술계에는 ‘다름’과 ‘차이’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예술로 구현한 작가들이 많다. 그들은 예술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배타성을 지적하고, 차이가 가져올 풍요로움을 자신만의 언어로 보여준다.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 기획전 ‘차이의 미학’은 이 같은 차이가 가져올 풍요로움을 한껏 느껴볼 수 있는 귀한 전시다. 조은정 고려대학교 초빙교수가 전시 감독으로 참여한 이번 전시에는 총 1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그들은 71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차이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김명희, 데비한, 김순임, 양나희, 이원호, 문승현, 박성태, 선무, 정은영, 서유라 작가는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을 제시한다. 이들은 예술을 통해 청년 문제, 노인 문제, 우리 안의 타자들인 탈북민과 재외국민 그리고 장애인과 성소수자와 입양인, 한때 한센병을 앓았던 이들을 소환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수학한 데비한 작가의 ‘비너스상’은 이번 전시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다. 작가는 국내의 석고상 소묘라는 획일적 미술 교육을 고발하며 비너스 탐구를 시작했다. 이 같은 탐구는 ‘미의 척도’를 비판하고 아울러 확장돼 포옹하는 서로 인종이 다른 비너스 작품으로 이어진다. 서로 포옹하고 있는 두 명의 비너스는 피부색이 다르다. 그리고 얼굴 역시 두터운 입술, 가느다란 눈매로 ‘미의 척도’로 여겨진 우리가 알고 있는 비너스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김순임의 ‘비둘기 소년’도 흥미롭다. 작가는 뉴욕 레지던시에서 머물던 중 동유럽 출신의 건물 관리인 다니엘을 알게 된다. 다니엘은 건물에 들어서면 꼭 만나야 하는 인물임에도 건물 거주자 중 누구도 다니엘을 알지 못했다. 작가는 펠트와 깃털로 ‘비둘기 소년’을 제작했는데, 이 소년은 다니엘의 운동화를 신고 있다. 작가는 “소년은 도시에서 눈에 띄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묻혀 있었다”며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풍경이 되어버린 도시의 비둘기, 그러나 그 공간을 자신의 세계화 한 도시의 성스러운 새가 떠올라 다니엘을 형상화한 작품의 이름을 ‘비둘기 소년’이라 지었다”고 설명했다.
최진욱, 박유아, 류준화, 신미경, 이창원, 김윤신, 이강소는 자신의 세계 안에 타자를 끌어들인다. 그들의 작품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동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포옹하는 인물들을 실루엣으로 표현한 이창원의 ‘허그 스텐실’은 궁극적으로 이 전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뉴스 미디어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포옹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가 제작한 포옹은 3차원의 실루엣으로 존재한다. 정치인, 각국 정상들, 유명 연예인, 사건 사고나 자연 재해의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서로 슬픔을 나누는 위로의 포옹, 전쟁의 상처로 자식을 잃은 한 인간의 슬픈 포옹 등 전세계 곳곳의 동시대인 겪는 포옹은 인류 현대사를 반영하는 그림자이기도 하다. 전시는 12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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