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은 생각 이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에요. 행성이 지구를 충격하는 정도의 확률입니다.”
지난 29일 강원도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열린 정책설명회에서 전우정 교통과장은 실제 급발진 사고는 천문학적 확률로 발생이 어렵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급발진은 차량이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급가속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자동변속장치를 장착한 자동차의 구동력이 제동력을 초과해 운전자가 자동차의 급가속 운동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최근 차량 사고 시 이를 주장하는 운전자가 늘면서 급발진이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올랐다.
이런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는 2020년 45건에서 2023년 105건으로 증가 추세다. 올해도 지난 6월까지 국과수에 급발진 여부 감정을 의뢰한 건수가 66건에 달한다.
하지만 국과수에 따르면 차량이 전소되는 등 감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되거나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가 없어 감정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곤 전부 브레이크 페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 과장은 “차량 조작이 힘들면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밟자’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과수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고 원인을 규명한다. 대표적으로 EDR과 페달캠(페달 부분을 찍는 카메라), 페달과 신발에 남은 흔적을 검사하는 슈마크(발자국) 등을 통해 분석한다. 대부분 차량에는 EDR이 있어 이것만 분석해도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으나, 페달캠과 슈마크를 통해 추가 검증을 거친다. 특히 사고 순간에 페달을 강하게 밟아 마찰력으로 생기는 슈마크는 EDR과 페달캠 등이 없는 구형 차량의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EDR은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장치로, 사고 발생 5초 전부터 사고 직후 0.3초까지 5.3초 동안의 엔진 회전수, 가속 페달 밟음량, 차량 속도, 브레이크 밞음 여부 등의 정보를 담고 있다.
전 과장은 “급발진 사고는 태양계 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정도의 확률”이라며 “차가 내 의지와 다르게 움직일 때 차가 아닌 ‘나’를 의심해야 한다. 내가 밟고 있는 것은 브레이크인데 차가 급발진하기에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 확증편향(確證偏向)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못 떼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을 떼고 내가 정확히 어떤 페달을 밟고 있는지 확인하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차량 제조사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페달 오조작을 방지할 기술을 개발해 장착하고, 보급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도요타는 ‘플러스 서포트(Plus Support)’라는 안전기능을 도입해 가속 페달을 잘못 밟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급가속을 제어한다. 고령 운전자와 초보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중요한 기능으로 평가받으면서 이미 판매된 차량에도 장착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현재 국과수에서도 고령 운전자를 위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 개발을 위해 관련기관과 협의 중이다.
국과수 측은 이어 “일본은 정책 보조금 지원으로 페달 오조작을 제한하는 ‘서포트 카’를 도입했다”며 “우리도 서포트 카 보급, 운전자 면허 기준 현실화 등의 대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7년부터 ‘사포카’로도 불리는 ‘안전 지원 차량’(Safe Support Car) 제도를 도입했다. 초음파센서로 장애물을 감지해 출력을 제한하는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PMPD) 장착 등을 담아 페달 오조작에 의한 사고 건수와 부상자 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포카 구매 시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데 2020년 기준 일본 신차의 약 90%에 PMPD가 장착됐다.
아울러 전 과장은 급발진 주장 운전자 평균 연령이 고령층인 점을 거론하며 “노인의 이동권은 분명히 보장돼야 하지만 면허 갱신 과정을 강화하고, 면허증을 반납할 때는 그에 합당한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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