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반 정도는 조사하러 나가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많은 분이 이 조사를 잘 알지 못해 무엇을 하는 건지 간혹 의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하는 일이 많은 연구의 원시 자료가 되는 게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이민아 수도권질병대응센터 만성질환관리과 팀장)
10월 31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정릉교회에서 건강검진 작업을 수행하던 이 팀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건강영양조사’ 작업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했다. 매년 47~48주 동안 전국 어딘가에서는 질병관리청이 국민건강영양조사를 위해 직접 운영하는 건강검진 차량이 돌고 있다. 1년이 52주임을 고려하면 연중무휴 움직이는 셈이다. 한 팀당 조사단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비롯해 간호사·임상병리사·방사선사 등 11명으로 지역마다 3~4일가량 머문다.
국민건강영양조사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국민의 건강·영양 수준을 파악하고 건강증진, 만성질환예방 관리 정책의 모니터링 지표를 산출하기 위해 매년 진행하는 조사다. 1세 이상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전국 4800가구, 총 1만명을 표본으로 뽑아서 조사를 진행하며 건강검진 외에도 흡연, 음주, 신체활동 같은 건강행태와 영양 섭취 현황, 만성질환 여부 등 약 400가지를 조사한다. 조사 결과는 분석을 거쳐 이듬해 연말 ‘국민건강통계’로 발표되며 건강주제별 분석보고서인 ‘국민건강통계플러스’도 발간한다. 각종 질환 관리 정책 수립, 국가 간 건강 지표 차이 분석 등에도 활용된다.
전국 192개 조사지역을 수도권(2팀), 충청·호남·제주, 영남권 등 총 4개 권역별로 나눠서는 길이 9.52m, 폭 2.27m, 높이 2m의 16t 트럭 2대가 전국을 누빈다. 좁은 차량 공간 안에 신장·체중·허리둘레·비만도·혈압·자동굴절검사 등 기본검사는 물론 골밀도, 폐기능, 혈액·소변, 악력, 체성분 등을 검사할 수 있는 장비를 갖췄다. 이들 건강검진을 일반 병원에서 받을 경우 약 35만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표본가구에 선발된 국민은 검진을 받으면서 비용을 아끼는 셈이다.
참가자들의 반응이 가장 좋은 검사는 역시 골밀도검사와 폐기능검사다. 둘 다 40대 이상 연령대를 대상으로 진행하는데 일반적인 건강검진에서는 잘 포함되지 않고 추가 비용을 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골밀도검사는 골다공증 유병률을 산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올해 처음 도입됐다. 촬영 부위는 허리(요추)와 고관절이며 골밀도 수치를 측정해 골다공증 여부를 판단한다. 검사에 앞서 수술 이력이나 최근 일주일 사이 핵의학 검사를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한 뒤 검사를 진행하며,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검진을 진행한 박이만 대한골대사학회 방사선사는 골밀도에 대해 “엿가락도 보면 속이 꽉 차 있으면 부러뜨리기 힘든데 속이 비어 있으면 탁 치면 부러질 것”이라며 “그런 골의 밀도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골밀도 수치가 낮으면 골다공증을 의심하는 것이다.
폐기능검사는 기도와 기관지가 좁아지는 만성폐쇄성폐질환과 폐가 섬유화되는 제한성폐질환 여부를 검사한다. 폐활량은 물론 폐에서 가스 교환을 끝내고 내뱉은 공기의 양인 호기량도 분석해준다. 코를 막고 검사용 호스에 온 힘을 다해 숨을 내뱉는다. 검진을 맡은 질병청 관계자는 만성폐쇄성폐질환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전 세계 사망원인 3위지만,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는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응급실을 찾는다”며 “한 조사구에 두 분 정도는 아주 심각한 경우가 나와서 의료기관에 방문하도록 권한다”고 말했다.
질병청에 따르면 기본적인 체성분 검사나 혈액검사 등의 신뢰도가 일반 검진보다 높다. 혈압 조사만 해도 흔히 쓰이는 측정 기계 대신 전문가가 대한고혈압학회 주관 교육을 받고 직접 혈압을 재 더 정확한 수치를 측정할 수 있다. 직장 또는 학교에 협조 공문이 발송돼 시간을 쉽게 낼 수 있다는 점, 조사 항목에 따라 최대 4만원의 상품권이 증정된다는 점도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다만 차량이 장기간 주차하며 검진 작업을 수행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엔진 소음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주변 주민들의 민원이 발생해 검진 장소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질병청 한 관계자는 “조사보다 장소 구하는 게 더 힘든 일”이라고 전했다.
질병청은 향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과 기후 변화 등을 고려한 항목을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비만 등의 질병은 추적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식생활조사 항목은 대면조사에서 온라인에서 직접 기입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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