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차에 흠집을 낸다며 앙심을 품고 길고양이를 살해한 남성 A씨가 올해 4월 창원지방법원으로부터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생명 경시 행위에 대해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해당 판결을 내렸지만, 동물보호단체를 비롯해 시민들은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재판부 판단에 분노한 데는 사건의 잔혹성이 자리하고 있다. A씨는 1년 6개월 동안 무려 76마리의 생명을 앗았다. 짧게는 하루 간격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휴대폰에는 이를 계획한 메모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4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해 1~9월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전체 85건 중 4건에 그쳤다. 이중 절반 이상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기간 검찰에 접수된 동물 학대 사건은 총 738건 중 76%가 구약식(446건) 혹은 불기소(234건) 처분을 받았다. 동물 학대 혐의를 받은 피고인 대부분 벌금형에 그친 것이다.
동물보호법은 제정 31년만인 2022년 개정으로 동물 소유자의 사육 및 관리 의무를 위반해 반려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도 동물 학대 행위로 추가됐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은 민법상 물건, 형법상 재물에 해당한다. 동물을 학대에 따른 형은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불과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양형위)는 이달 1일 국민 법 감정에 발맞춰 동물보호법위반범죄 양형기준 설정안을 심의했다. 2025년 3월 최종 심의를 거쳐 동물 학대 관련 권고 형량범위와 양형인자, 집행유예 기준을 확정할 예정이지만, 법조계와 동물보호단체 내부에선 양형 기준을 높이는 것만이 동물 학대를 근절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민법에 동물의 권리를 먼저 규정하고, 부칙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동물보호법 위반에 대한 문제 의식도 강화하고, 비로소 사법부의 엄단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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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법무부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민법에 추가하는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까지 상정됐지만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동물의 권리와 지위에 대한 규율이 없을 시 분쟁 및 법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법원행정처 등의 '신중검토'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 소장인 김도희 인권변호사는 “동물이 누군가의 소유물 또는 재산으로 취급되는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는 양형기준만 강화한들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누군가의 소유인 동물과 길고양이와 같은 그렇지 않은 동물에게 같은 수준의 학대를 하더라도 처벌 수위가 다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사법 전문 변호사는 "동물을 생명체로 규정하는 개정 외에도 학대와 그 권리를 보호하는 특별 규정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양형 강화가 동물학대 근절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동물보호법 개정이 지연될수록 사법부의 판결과 국민 법감정의 간극은 커지고 있다. 동물 학대에 대한 국민들의 문제 의식은 날로 커지는 동시에 처벌 강화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지만 동물 학대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 대부분 벌금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올해 1월 발간한 2023년도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동물학대 처벌 수준이 '약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45.6%에 달했다. 이는 2022년(41.2%) 응답 비율 대비 2.8%포인트(p) 증가한 수준이다. 반면 처벌 수준이 ‘강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12.8%로 2022년(16.1%)와 비교해 3.3%p 감소했다. 동물학대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 및 사육금지에 대한 질문에는 89.7%가 찬성 의견을 밝혔다.
심인섭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대표는 “동물 학대범죄에 대한 형량이 몇 번의 개정을 거쳐 높아진 것은 엄벌을 요구하는 사회 요구가 분출됐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독일 등 유럽 국가와 같이 헌법상 동물에게 제3의 지위를 부여하는 개정이 어렵다면 최소한 동물의 기본 권리를 담을 수 있는 개정이 절실하다. 솜방망이식 처벌은 결국 동물 시민단체의 자정 행위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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