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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위기의 韓 산업, 기업 가치·부가가치·혁신성 ‘밸류업’ 주력해야”

◆양희동 차기 한국경영학회장(이화여대 교수)

AI 기반 ‘영역 파괴’ 패러다임에서 자금력 부족해 불리

반도체 등 ‘잘하는’ 분야 부가가치 제고에 주력할 필요

비대한 정부·국회 ‘기업 옥죄기’는 산업 경쟁력 걸림돌

기업 스스로 성장 생태계 이끌도록 자유롭게 풀어줘야

차기 한국경영학회장인 양희동 이화여대 교수가 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평가된 기업의 시장 가치뿐 아니라 부가가치, 혁신성도 ‘밸류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규빈 기자




‘산업 대전환’의 시대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전개되는 산업구조와 교역 질서의 변화, 공급망 재편 흐름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미래 전략 수립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우리 기업들은 과도한 규제와 낡은 구조에 갇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내년에 한국경영학회장을 맡게 되는 양희동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업의 시장 가치와 부가가치, 혁신성 등 포괄적 측면에서의 ‘밸류업’이 산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며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기존 영역의 숙련도와 전문성을 높이고 부가가치를 키우는 일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양 교수는 “관료주의화된 기업 경영 체제, 규제와 단속으로 기업을 길들이려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시대에 맞게 기업 체질을 강화할 수 있다”면서 “특히 기업이 정치에서 자유로워져야 원활한 성장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서 산업 패러다임이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는가.

△최대 화두는 인공지능(AI)이 촉발하는 ‘산업 간의 영역 파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융합이 가속화하면서 하나의 사업에서 어떤 영역으로 확장해나갈지가 매우 중요해졌다. 이 같은 시대에 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브랜드 파워와 자금력이다. 문제는 대전환의 주축이 되는 AI 부문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자금력에서 밀리는 게 주요 원인이다. 우리의 AI 투자금은 선두 그룹인 미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니 AI 주도권 싸움에서 고유의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미국의 기술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 나아가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위기가 우려되는 이유다.

-시대적 변화에 맞게 기업들이 체질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기업 경영은 대부분 관료주의적으로 바뀐 상태다. 의사 결정이 늦은 데다 창의적 아이디어도 나오기 어렵다. 체질을 바꾸려면 ‘거수기’ 역할에 머무는 이사회가 실제로 경영진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의사 결정에 반영될 수 있는 선진화된 지배구조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전문 경영인 체제를 활성화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 운영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지금도 오너의 사법 리스크와 사생활 이슈화 등 ‘길들이기’ 행태가 만연해 있다. 정부의 규제·단속에서 벗어나 경영진과 주주, 이사회 등이 상호 협력·견제를 하며 기업을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산업 환경이 급변하고 있으나 우리 산업구조는 수십 년 전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한 영역을 맡고 있다. 독자적인 영향력을 갖기보다는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 편승하는 구조이다 보니 독자적으로 새 영역을 개척하기 힘들다. 경제성장률이 2% 안팎의 낮은 수준에 머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부터 판을 벌여 놓은 영역에서 생존하기도 힘들어졌다.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이 거의 성숙 단계에 다다랐고 미래의 ‘게임체인저’인 AI 분야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영역으로 치고 나가는 것보다 반도체 등 잘해온 영역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제조업에만 국한하지 말고 문화 등 소프트웨어 분야 부가가치를 키우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기업의 성장 생태계도 막혀 있는 것 같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력 확보의 취약성이다. 스타트업에서 경력을 조금 쌓은 인재는 금세 대기업으로, 외국 기업으로 빼앗기는 것이 현재 인력 밸류체인의 현실이다. AI 분야에서 한국이 인도와 이스라엘에 이어 세 번째로 인재 유출이 많은 국가라는 미 스탠퍼드대 보고서가 나왔을 정도다. 빠져나가는 인재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인프라, 즉 교육이 취약하다. 게다가 국내 벤처캐피털은 오랜 안목으로 투자하기보다는 짧은 기간에 성과를 올려 자금을 회수하길 원한다. 돈과 사람이 없으면 사업이 커나갈 수 없다.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면.

△인재 풀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 체제 구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유럽과 아시아 각국 등이 연합해 첨단산업 분야에서 자유롭게 교류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인수합병(M&A)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대기업이 탄탄한 자본력으로 혁신적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키워나가도록 세제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창업이 활발해지고 원활한 성장 생태계가 조성된다. 지금은 규제가 너무 많다. 어느 정도 경쟁력과 판로를 갖춘 중견기업은 살아남을 수 있지만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진입하기 어렵다. 중견기업 초기 진입에 따른 엄격한 규제를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

-교육도 달라져야 할 텐데.



△우리나라 대학은 학부 중심이다. 그 결과 그동안 무리한 대학 입시 경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인력을 양성하려면 대학원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우수 석박사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유능한 외국인 학생들이 유입되고, 기업과의 공동 연구개발(R&D)도 활성화돼야 한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교육 문제를 건드리면 표를 잃는다는 생각에 개혁을 외면하고 있다. 교육 개혁을 약속했던 윤석열 정부에서도 후속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정권에서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대학원 중심의 대학 운영을 국가 어젠다로 삼아 무리한 입시 경쟁을 해소해야 한다.

-위축되고 있는 기업가정신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업에 승부를 걸려면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데 지금은 한번의 실패로 낙인이 찍히는 시대다. 사회·경제적, 때로는 정치적으로 매도당하는 등 실패의 비용이 너무 크다 보니 성공할 수 있는 안전한 사업만 하게 된다. 3세 경영자들은 자칫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불안도 느끼게 된다. 강력한 노조와 강력한 정부, 정치인의 간섭에 더해 일반 시민들도 기업인을 준범죄인 취급하는 환경에서 창업 1세대와 같은 마인드를 유지하기는커녕 외부 활동도 자제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인은 돈을 버는 사람인 동시에 고용을 일으키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등 많은 긍정적 영향을 일으킨다. 기업인에 대한 평가와 인식이 보다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은 정부가 뭔가를 하려고 애쓰기보다 안 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미 기업을 옥죄는 규제들이 너무 많다. 여기서 뭘 더 하려고 나서면 정부나 국회가 더 비대해지고 이는 곧 규제 증대로 이어진다. 기업들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도록 최대한 자유롭게 풀어놓아서 기업 스스로 생태계를 이끌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판단해서 돈을 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진작 망해야 하는데 연명하는 좀비기업이 생겨나는 것도, 1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AI 예산이 엉뚱한 곳에 흘러가는 것도 정부의 잘못된 지원에서 비롯된 일이다. 능력 없는 기업은 퇴출되고 능력 있는 기업은 M&A 등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과감하게 없애면 된다.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된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답답한 상황이다. 저성장은 사실상 고착화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과거와 같은 ‘패스트 팔로어’가 아닌 ‘패스트 스윙어(fast swinger)’를 지향해야 한다. 기회가 보이는 쪽으로 빨리 올라타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를 끌고 가는데 미국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고 유럽과 아시아 등 제3국도 중요하다. 누구를 따라갈지 결정하는 것이 국가의 새로운 역할이 될 것이다. 기업은 정부가 판을 깔아주면 어떻게든 서플라이체인에서 역할을 확보해 신속하게 적응하고 자리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어느 공급망에 들어갈지에 대한 판단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과거 기준으로 현재와 미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한국경영학회의 내년 화두를 소개한다면.

△우선은 ‘밸류업’이다. 지금 한국의 기업가치는 저평가돼 있다. 단지 주가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시장 가치와 부가가치, 혁신성 등 포괄적 측면의 밸류업을 이뤄야 한다. 시장 가치 측면에서는 상속세 문제 등 주가의 발목을 잡는 요인들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재적 가치를 깨닫고, 평가를 제대로 받고, 자신감 있게 더 높은 부가가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양보다는 질, 새로움보다는 숙련도와 전문성을 키우는 쪽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두 번째는 정치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한국 경제를 어떻게 이끌어가려는지 기업들이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경제·기업관과 규제에 관한 그들의 철학을 듣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다. 세 번째는 한국 럭셔리 문화의 발굴이다. K컬처가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은 대중적 문화에 국한돼 있다. 우리의 고급 문화를 발굴·공유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K컬처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할 때다.

◇He is…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마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대우증권·삼성SDS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조교수를 거쳐 2001년부터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지식경영학회장·한국경영정보학회장을 지낸 데 이어 2025년 한국경영학회장을 맡게 된다. 경영정보시스템(MIS) 분야 등을 주로 연구해왔으며 국내외에서 다수의 연구 논문을 발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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