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0.5%를 전망하던 시장의 기대와는 다르게 0.1%에 그쳤다. 2분기가 역성장(-0.2%)이었음을 감안하면 1분기 이후부터는 제자리걸음도 못하고 있다. 비록 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한국은행은 환율 및 가계부채를 이유로 기준금리의 빠른 인하와는 선 긋기에 나섰다.
사실 연체율 상승, 자영업자 폐업 증가, 수출 경쟁력 위축 등을 고려하면 당장 금리 인하에 속도를 내도 전혀 무리가 없다. 통화당국은 정부와 정치권이 올해 내내 금리 인하를 거세게 압박하는데도 꿋꿋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은의 결기를 다시 본다.
실상 재정건전성 기조, 대내외의 고착화된 인플레이션 패턴 속에 정부가 펼칠 수 있는 정책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저성장의 원인을 살펴보자. 민간 소비 0.5%, 정부 소비 0.6%, 건설투자 -2.8%, 설비투자 6.9%, 수출 -0.4%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건설투자가 감소하면서 내수 및 수출이 받쳐주지 못해 암울한 성적표가 주어졌다. 4분기에는 정부 소비가 위축되는 계절성이 있다는 점, 글로벌 경기 하강세에서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전망은 역시 어둡기만 하다.
결국 시선은 한은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성장 저하에 대한 지적과 지지율을 고려해서 정부와 정치인들은 체질 개선과 구조조정이라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금리 인하로 건설 경기를 부양하는 동족방뇨(凍足放尿)식 대책부터 찾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환자를 일부러 많이 아프게 해놓고 약을 쓴 다음에 명의라고 하는 견해와 다를 바 없다”는 비유까지 들며 대증요법에 불과한 경기부양용 금리 인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재 우리 경제 여건상 금리 인하는 내수 진작, 투자 촉진보다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섣부른 추가 금리 인하는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올리고 잠재성장률을 낮춰 구조적 문제를 심화시킬 뿐이다. 감기에 걸려 치료약이 필요한데 치료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큰 상황이라 감기약을 못 쓰는 형편이다. 결국 감기는 자연 치유력에 맡기고 큰 병부터 치료해야 한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에 머물지 않고 노동·농업·교육 등 다른 영역의 구조 개혁에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서울 집값을 잡으려면 강남지역 학생들의 명문대 입학 상한선을 둬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는 당연히 관련 분야 및 관계 부처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은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는데도 관련 분야나 관계 부처 및 정치권은 아무 개혁도 못 하고 있다. 이 총재의 용기 있는 옳은 소리는 통화정책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 경제의 구조 개혁을 위한 마중물로 역할하기를 기대해 본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환율 상승으로 인해 통화 정책 여력이 좁아졌다. 사실 미국 대선이 끝나면 환율과 금리가 안정되고 추가 금리 인하 여건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중립 금리를 고려할 경우 인하 폭은 기껏해야 0.5~0.75%포인트에 불과하다. 한은도 여러 번 강조했듯이 우리나라의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게 부동산 부양 위주의 정책이 재설정되는 것이 급선무이다.
한은이 결기를 보여주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점은 고무적이다. 근시안적 대책으로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최악의 상황은 면해야 한다. 한은은 정치권에서 섣부른 부동산 부양을 위한 정책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금융안정에 대한 구체적 목표를 새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책당국도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님을 알고, 구조조정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히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인기영합적인 정책 선택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산업의 투자 촉진, 새로운 먹거리 발굴, 지속적인 내수 성장동력 발판 마련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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