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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하루]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 붕괴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1989년 11월 9일 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시민들에 의해 무너졌다. 동서 베를린의 주민들이 망치와 도끼를 들고 장벽을 허물었다. 그 전에도 전파는 오갈 수 있었다. 동독 주민도 서독의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친척 방문도 가능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자유로운 이주는 불가능했다. 장벽은 동독 주민의 서독 이주를 저지했다. 자유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동독은 거대한 감옥이었다. 탈주를 감행한 사람 중에 일부는 성공했으나 일부는 사살됐고, 다수는 체포됐다.



체포된 사람들 중에 회펠마이어 가족이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해 동독을 탈출하려 했던 가족은 사정이 여의치 않자 동베를린에 있는 오스트리아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가족은 결국 체포됐다. 에르푸르트 안드레아스 거리에 있는 국가보안부 구금조사실로 끌려간 가족은 각기 다른 감옥에 수용됐다. 수많은 가족이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많은 사람이 염원했던 장벽 붕괴는 우연처럼 시작됐다.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항의 집회가 불길처럼 퍼져가자, 동독을 지배하던 사회통일당이 통제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혼란 끝에 국가수반 에리히 호네커가 10월 18일에 사임했다. 그 자리를 대신한 에곤 크렌츠는 신중한 개방을 약속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에서 귄터 샤보프스키가 국경을 즉시 개방하겠다고 잘못 발표했다. 그 소식에 엄청난 인파가 국경으로 몰려들었고, 여파는 걷잡을 수 없이 컸다. 독일 분단과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 소식을 들은 세계적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왔다. 분단의 상징인 체크포인트 찰리를 찾은 그는 경비원에게 빌린 의자에 앉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2번 사라방드를 연주했다. 소련을 떠나 전 세계를 떠돌던 대가의 연주는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의 마음은 처연하기 이를 데 없다. 애써 연결한 남북 간 도로와 철도가 폭파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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