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이단아’로 평가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4년 만에 백악관에 재입성하면서 그를 더 이상 ‘운 좋은 별종’으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치솟는 물가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미국인들에게 ‘리무진 리버럴(고급 승용차를 타는 좌파)’로 변질한 엘리트 민주당이 주창하는 이념이나 가치보다 트럼프의 노골적이며 때로는 저급한 일침이 더욱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집권 1기 때와 차원이 다른 정당성을 확보한 그가 강력한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적 몰아내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 시간) “(트럼프의 승리로) 양당의 집권 엘리트들이 오랫동안 키워온 미국에 대한 이해는 쓸려나갔다”며 “트럼프를 더 이상 요행수로 어쩌다 백악관에 입성한 변칙적 인물로 치부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주류 정치권은 트럼프 당선인을 별종으로 봤지만 이번 대선을 통해 미국인 과반수가 트럼프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주류와 비주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경로에 대한 포퓰리즘적 환멸과 엘리트에 대한 분노는 거셌으며 이 같은 균열이 사상 최초의 ‘중범죄자 대통령’을 재선시켰다고 NYT는 꼬집었다.
미국인들이 전쟁과 이민 문제는 물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등 이념적 가치에 질렸고 더 나아가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트럼프 당선인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다수의 미국인들은 인종·성별·종교·출신·성소수자 등과 관련한 그의 노골적인 공격을 외면하기보다 적극 수용했고 더 나아가 열렬히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분노한 대중에게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내세운 미래의 사명보다 트럼프 당선인이 쏟아낸 서민들의 불만을 건드리는 전투적 메시지들이 호소력을 가졌다고 짚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참모를 지냈던 피터 웨너는 “미국인들은 이번 선거에서 끝도 없이 부패한 이(트럼프)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며 “트럼프는 더 이상 일탈이 아닌 정상”이라고 말했다. 티머시 나프탈리 컬럼비아대 대통령역사학자 역시 이같은 상황을 지적하며 “가면을 벗은 미국의 진짜 얼굴이 결국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로 상징되는 미국인의 이기심”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선거가 미국의 양극화를 극명히 드러냈으며 더 나아가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대파들을 악으로 낙인찍는 파시즘적 언어를 택하거나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일삼았다. 오코시 마사히로 니혼게이자이신문 워싱턴지국장은 “자신의 정적을 중국·러시아보다 위험한 내부의 적으로 묘사하며 사회의 분단을 자신의 정치력을 위한 양식으로 삼는 인물이 다시 권력을 잡은 것”이라며 “미국인들은 ‘미국을 분열시키는 내전’의 종식이 아닌 내전의 상시화를 택했다”고 진단했다. 이번 선거는 미국이 여성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NYT는 “트럼프가 간통으로 세 차례 결혼했고 20여 건의 성추행 혐의로 기소됐지만 공직 경험이 풍부한 여성을 두 차례나 물리쳤다”고 꼬집었다.
1기 때 경험 및 당내 세력 부족으로 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렸던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2기 내각에서는 철저하게 충성파로 채우며 더욱 강력한 권력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입법부까지 장악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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