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노동계가 화물연대본부 파업에 이어 건설현장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판단을 두고 다시 부딪쳤다. 현 정부는 불법에, ILO는 권리에 초점을 둔 상황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전일(현지시간) 2022년 10월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제기한 진정건에 대해 권고문을 채택했다.
1919년 설립된 ILO는 세계 경제 변화에 맞춰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정책을 제안하는 국제연합(UN) 내 전문기구다. 설립 이후 작년 10월 기준 187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핵심 협약은 회원국 국내법에 준하는 효력을 지닌다. 우리나라는 1991년 152번째 회원국이다. 올해 이사회 의장국이 됐다. 결사의자유위원회는 ILO의 특별감독 절차로 회원국 제재까지 가능하다.
건설노조 진정은 문재인 정부 말부터 현 정부 초기까지 이어진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대책이 노조의 노동권을 침해하는지가 쟁점이었다. 건설노조는 단체교섭 요구와 산업안전 감시와 같은 정당한 노조권을 정부가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는 건설현장 채용강요, 공갈·폭력을 막기 위한 정부 고유 역할이라고 반박했다. 양 측의 이런 상반된 입장은 거리 집회, 법적 분쟁 등 여러 형태로 분출됐다. 급기야 작년 5월 건설노조 간부였던 양회동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노정 갈등이 격화됐다.
결사의자유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제재를 하지 않고 세 가지 사안을 요청했다. 우선 건설현장 고용 불안을 해소하고 갈등 예방을 위해 건설업 노사단체와 협의를 요청했다. 이는 건설노조가 요구한 교섭 요구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원회는 교섭 결정은 정부가 아니라 노사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판단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당한 노조 활동에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공정위는 건설노조를 사용자단체로 판단한 후 여러 제재에 나섰다. 위원회는 당초 건설노조가 노조로서 지위가 명확하게 인정됐더라면, 공정위의 개입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건설노조가 평화적인 단체행동이나 산업안전보건상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로 체포, 기소 등 형벌이 없어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했다. 정부는 작년 건설 현장을 집중적으로 단속해 144명을 기소했는데, 이들은 1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산업안전 보장 요구는 정당한 노동권인만큼 선별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권고를 두고 정부와 노동계의 판단은 상반된다. 정부는 결사의자유위원회가 한국 정부가 ILO 제87조(결사의자유)와 제98호(단체교섭권) 협약 위반이라는 건설노조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올 3월 결사의자유위원회는 2022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대응에 대해 화물연대 노조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것과 같은 논리다. 당시에도 위원회는 협약 위반 판단은 하지 않았다는 게 정부의 항변이었다. 고용부 측은 “건설노조의 자기 조합원 채용 강요, 공사방해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노사 불문하고 정당한 활동은 적극 보장하면서 불법에 대해 엄정 조치한다는 노사법치의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진정건 당사자인 건설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가 ILO 권고를 실질적으로 거부한다는 입장으로 이해한다”며 “의장국이 된 정부가 대놓고 권고를 거부하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도 성명을 내고 “ILO 87호는 공정거래법과 업무개시명령과 같은 국내법을 노조 권리 저해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은 명확히 한다”며 “건설노조의 노조 활동에 대한 탄압과 형사처벌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같은 정부와 노동계의 입장 차는 화물연대 진정건 판단에서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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