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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기업으론 못 버틴다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보조금 못받고 '관세폭탄' 맞을수도

美 보호무역 강화 추세 상수로 삼아

'대체불가능' 제품 경쟁력 확보 나서야


연초 실리콘밸리를 찾은 한 국내 대기업 사장급 인사와 미국 대선 향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자리를 함께한 이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이 한국 기업들에 미칠 리스크를 우려했다. 그 역시 변수가 커진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한국 기업들 모두 이미 한 번 겪어봤기에 첫 당선 때와는 달리 내부적으로 대비가 돼 있어 8년 전과 같은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도 100% 확신하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간절한 희망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챗GPT가 칼럼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일러스트




이제 우려는 현실이 됐다.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입성했을 뿐 아니라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장악했다. 하원이 민주당에 넘어간 데다 레임덕에 시달리던 트럼프 1기 말과 비교하면 사법부 권력까지 장악한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의 리더십은 8년 전보다 더욱 강력할 것이 확실시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지난 4년간 추진한 정책은 내년 1월 모조리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 4년간 민주당 정책 기조를 따라왔던 우리 기업들도 새 판을 짜야 할 처지다.

당장 반도체·자동차·2차전지 등 한국 주력산업이 문제다. 특히 반도체지원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믿고 미국 내 투자를 늘려온 기업들은 약속됐던 지원금과 세액공제를 받아내는 게 관건이다.

바이든 정권이 지원금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면 트럼프 2기는 관세라는 ‘채찍’을 휘두르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반도체법을 믿고 미국 내 거액을 투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는 지원금 대신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걱정하게 됐다. 약속은 됐으나 계좌로 들어오지 않은 보조금이 각각 64억 달러(약 8조 9000억 원), 4억 5000만 달러(약 6300억 원)에 이른다.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에 기대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멕시코에 공장을 지어온 우리 자동차 기업도 “멕시코산 차량 200% 관세” 언급이 공포스럽다.

이미 시장은 트럼프 2기를 발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환율은 치솟았고 지구 반대편 뉴욕 증시가 폭등하는 반면 코스피·코스닥은 하락세다. 대미 수출에 기대는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인텔·마이크론, 테슬라·GM·포드 등 미국 반도체·자동차 주가 폭등에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불 보듯 뻔한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도 우려를 키운다. 중국·대만 갈등은 한국에 호재가 될 수 없다. 지구적 관점에서 대만과 남한은 지척이고 휴전선과 국내 주요 반도체 생산지는 ‘생활권’이나 다름없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 한국 국내총생산(GDP) 23%가 증발할 것이라는 블룸버그 전망이 나온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처럼 반도체법과 IRA를 전면 폐지하기는 힘들다는 낙관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행운에 기대는 것은 대책이 아니다.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도 당초 예상보다 보조금을 타내기 어려워지거나 보조금이 미국 기업에 우선적으로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우리 기업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공화당의 상·하원 석권은 4년 후 트럼프 당선인 임기가 끝나더라도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사라지게 만든다. 한국은 무역 국가다. 결국 모든 전략적 결정에서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추세를 상수로 삼아야 한다. 더 이상 가격 경쟁력은 우리의 장점이 될 수 없다. 관세 부담에도 한국 제품을 찾을 만한 강점을 지녀야 한다. 초미세공정 반도체 제조를 전담하는 TSMC처럼 대체 불가능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 대체 불가능성만이 지정학적 위기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는 방책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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