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9월 2일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보스턴글로브에 도널드 트럼프의 광고가 실렸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일본과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이용해왔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이렇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선박을 보호해주고 미국에 필요 없는 석유를 운반해주는 사이 이들 국가는 방위비 부담 없이 유례없는 대미 흑자를 냈다는 것이다. 결론은 그때나 지금이나 명확하다. “그들에게 돈을 더 내게 하라(pay).”
30년도 더 된 그의 생각이 이번에는 관세로 구현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모든 나라에 최대 20%, 중국에는 60%의 고율 관세를 물리겠다고 밝혔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물가 폭등을 불러오는 자해 행위라고 지적하지만 트럼프는 자신만의 계획이 있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석유와 가스 시추를 늘려 취임 첫해에 에너지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파리기후협약을 또 탈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을 반으로 낮추고 농산물 가격을 안정화하면 이 두 가지 카드만으로 관세 폭탄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꽤 상쇄할 수 있다.
팁 면세도 있다. 팁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면 저소득층 소득이 상대적으로 올라간다. 고관세에 해외 업체가 미국에 공장을 짓고 밖으로 나간 미국 기업들이 돌아오면 일자리가 늘고 근로자의 소득이 상승한다. 이는 공산품 가격 상승을 버틸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관세는 다른 나라와 협상하기 위한 최고 수단이다. 트럼프가 다시 한 번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자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무역 협상에서 핵심 포인트는 관세 부과가 신뢰할 수 있는 위협 도구라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거래의 달인인 트럼프는 관세의 중요성을 동물적으로 안다. 그가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관세”라고 했을 때 2기 행정부의 핵심 대외 정책이 관세가 될 것임이 명확해졌다. 관세는 부과한 뒤 철회할 수 있고 매기겠다는 의사만 표시해도 상대방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다. 철강과 자동차 같은 특정 분야에 대한 관세나 수출 쿼터도 가능하다.
한 국가가 미국과 거래하지 않고 생존할 수는 있지만 번영은 불가능하다.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두려울 것도 없다. 재선인 트럼프는 이번이 마지막 임기다. 그의 뒤에는 미 국민들도 있다. 10일 현재 트럼프의 전국 득표율은 50.5%(7464만 4300표)로 카멀라 해리스(47.9%) 미 부통령을 압도했다. 선거인단뿐만 아니라 득표수까지 민주당을 앞섰다. “트럼프는 거짓말쟁이”라는 프레임은 불법 이민 대란과 물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및 중동전쟁 앞에 산산이 깨졌다. 코로나19 이전의 트럼프 시절 경제는 좋았고 이란은 상자 안에 묶여 있었으며 러시아와 중국은 고분고분했다는 평가가 최소한 미 국민 사이에서는 허튼소리가 아니었던 셈이다.
“보편관세가 되겠느냐” 같은 막연한 기대감은 접어야 한다. 정부는 관세를 넘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주한미군 철수 압박 같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트럼프도 우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대비 해군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K조선’의 도움이 절실하다. 무역적자 규모를 줄여 줄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한국이 ‘머니 머신’이라며 노골적인 요구를 하고 있지만 원전과 우주산업에서 함께 윈윈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관건은 정부 대응이다. 트럼프 당선 뒤 정부는 한국의 대미 투자가 공화당 지역구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적극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자료를 냈다. 백인 노동자들의 좌절은 공화당 지역구가 아니라 미 전역에 걸친 문제다. 이 정도의 상황 판단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세에 대처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제 대미 관계에서 추가 부담은 피할 수 없다. 경기의 규칙이 바뀌었다. 다만 우리도 얻어낼 것은 얻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냉철한 상황 인식이 먼저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얻어낼지는 정부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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