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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국가 이탈리아의 파수꾼, 저축은행 재단 [아트씽]

[정준모의 여기, 역이(逆耳)]

'미래의 전통' 문화강국 이탈리아

가톨릭 박애정신 기반한 저축은행

저소득층 저리대출의 '자비의 산'

저축은행 사회공헌, 재단으로 독립

자비의 산(Monte di Pieta)과 로마저축은행(Cassa di Risparmio di Roma)의 컬렉션을 전시하는 팔라초 시아라(Palazzo Sciarra)의 미술관.




이탈리아의 문화를 대하고 문화재를 다루는 솜씨는 실로 대단하다 수십 세기가 지난 건축물을 복원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남은 건 최대한 다듬어 원형을 살리고, 없어진 부분은 과감하게 지금의 방식으로 ‘오늘’로 메워 넣는다. 역사와 전통으로 먹고사는 나라답게 지속해서 ‘미래의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의 문화와 예술이 내일의 전통이 되고 이것이 먹거리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탈리아는 나이 들었지만 젊은 국가다. 그래서 근현대미술, 동시대 미술에도 진심이다. 동시대 미술의 세계적 플랫폼으로 새로운 미술이 모였다 흩어지며 오늘의 미술이 내일의 미술사가 되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탈리아가 꾸준히 문화와 예술에 투자하고 지원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정책적 지원도 있지만, 이탈리아 특유의 지금은 ‘저축은행 재단’(La Fondazione Cassa di Risparmio)으로 발전한 100년 역사의 저축은행(Cassa di Risparmio)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저축은행은 개인으로부터 예금을 유치해 위험이 덜 한 곳에 투자해 예금자에게 이자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은행은 원래 저소득층에게 저리 대출을 하며, 근검절약과 저축 그리고 무계획적이고 방만한 재정 운용을 방지할 할 목적으로 설립된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목적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은행’으로, 저소득계층에게 자금을 공급하고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경제적 자립을 돕는 ‘포용금융’(Financial Inclusion)을 실천하는 은행이었다.

가톨릭의 박애 정신이 바탕에 있는 저축은행은 ‘은행’과 달리 ‘이윤’보다 ‘안전’한 투자에 우선하는 특수은행이다. 차입이 아닌 저축만으로 영업하는 점은 19세기 후반 출범한 ‘협동조합 은행’과 다른 점으로 일반적으로 지방 또는 중앙정부의 엄격한 규제와 감독을 받으며, 국채나 금융위험이 낮다고 판단되는 상품에만 투자할 수 있도록 제한받았다. 단기예금에도 복리 이자를 지급해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 서민들에게 소액 저축을 장려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역경제 활동의 지원을 위해 신용 대출, 특히 주택담보대출이나 토지담보대출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저축은행이 개인연금을 제공하는 등의 오늘날 기업의 사회공헌사업(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저축은행이 상장 기업으로 변모하고 유니크레디트(Unicredit)와 인테사 산파올로(Intesa Sanpaolo) 같은 대형 은행 그룹과 합병되었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저축은행은 여전히 지역사회발전을 지원하고 더 많은 대중에게 혜택을 주는 금융 서비스 제공과 함께 국가를 대신해 사회와 문화복지를 책임지는 한 축으로 역할하고 있다.

자비의 산(Monte di Pieta)과 로마저축은행(Cassa di Risparmio di Roma)의 컬렉션을 전시하는 팔라초 시아라(Palazzo Sciarra)의 미술관.


돈 많은 부자에게 유독 가혹했던 가톨릭교회는 “부자는 지옥에 갈 운명”이라 규정했고, 단테(Dante Alighieri·1265~1321)의 ‘신곡’ 중 ‘지옥’편 등장인물은 모두 무거운 돈주머니를 목에 걸고 있다. 천국의 문을 통과할 수 없는 돈 많은 이들의 돈 많이 번 죄를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부자로부터 헌금을 받아 만든 것이 저축은행의 원조로 일종의 전당포인 “자비의 산”(Monte di Pietà)이다. 15세기 이탈리아 프란체스코회 수사들이 주도해 만든 비영리 금융 기관인 자비의 산은 서민들에게 물건을 담보로 시세보다 낮은 이자로 대출해주는 교회가 운영하는 밑천 안 들어간 전당포였다. 첫 번 자비의 산은 1462년 페루자에 세워졌고, 이후 여러 도시로 퍼져나갔다. 자비의 산은 저소득층을 빈민으로 전락시키는 고리대금을 근절하고자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었다. 물론 이런 본래의 취지가 후일 많이 퇴색하기도 했지만, 저소득층, 빈민을 위한 금융 기관이었던 것은 지금도 확실하다.

‘자비의 산’의 박애와 포용적 행동은 18세기 후반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저축은행으로 탄생했다. 은행은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고, 모든 계층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특히 이익추구가 목적인 상업은행과 달리 비영리 기관으로 저축과 근검절약을 권장했던 저축은행은 175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돼 프랑스 혁명 기간 번성했으나 곧 시들해졌다. 그 후 1778년 함부르크에 저축은행의 효시인 ‘일반저축연금은행’이 문을 열고 뒤를 이어 1801년 괴팅겐의 시립 저축은행이, 1810년 영국 최초로 스코틀랜드의 루스웰, 1816년 보스턴, 1818년 파리, 1819년, 빈 그리고 이탈리아에는 1822년 베네치아에서 문을 열었다. 특히 이탈리아의 저축은행은 대부분 ‘자비의 산’과 이와 비슷한 기금을 운용하는 도시에서 개인 또는 시민, 지방정부가 주도해 설립되었다. 그 후 60여 년만인 1880년 이탈리아 전역에 183개의 저축은행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들 저축은행은 은행이 설립 운영되는 지역의 예술, 문화, 환경, 사회 및 과학 연구와 관련된 사회적으로 유용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홍보하는 사회 복지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것을 금융 기관으로서의 업무에 우선해서 시행했다.

저축은행의 확산과 성장으로 정부는 1888년 법률(Legge 15 luglio 1888, n. 5549)로 저축은행의 설립과 운영에 관해 명확하게 정해 농업산업통상부(Ministero delle Politiche Agricole Alimentari e Forestali)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했다. 법은 저축은행을 안정적인 국공채와 기타 안전한 곳에 투자할 수 있게 했다. 따라서 예금 안전성도 올라가고, 높은 이자 지급이 가능해졌고 특히 자선 활동과 지역 사회 개발에 참여해 지역과 강력한 유대를 구축하면서 우체국이나 협동조합은행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저축유치 경쟁을 하게 되었다. 1926년 정부는 저축은행 운영에 더 엄격한 요건을 부과하는 법률을 만들어 새로운 규제의 준수와 안정성 확보를 위해 소규모 저축은행을 각 주의 주도에 있는 대형저축은행과 합병을 장려했다. 그리고 1936년 법은 저축은행에게 독점적으로 ‘현금서비스’와 유사한 단기대출업무를 허용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축은행이 공법상 ‘도덕적 기관’으로서 법적 성격을 유지하고, 주로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한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이 도덕적 기관으로 지정된 것은 그간 ‘공익’을 위해 헌신한 점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앞으로 저축은행에게 수익의 극대화보다 고객과 지역사회의 복지에 우선하라는 뜻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부 저축은행은 전쟁 이후 경제 재건을 위한 금융의 수요 증가와 정부의 지역 금융에 세금 우대와 우호적인 규제 그리고 미국의 대외경제원조정책으로 재건과 개발에 필요한 자본이 유입되면서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이런 성장에도 불구하고 재무 안정성 유지를 위한 엄격한 규제와 많은 은행이 조합원 자격이 제한되는 협동조합 형태이라서 확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저축은행은 2차 대전 이후 은행인 동시에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준국가 기관의 지위를 얻었다. 그러나 저축은행 중 여러 곳은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초심을 잃고 상업은행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은행으로 변신한 곳도 나왔다.

갤러리 이탈리아 토리노, 인테사 산파올로은행의 본점이 있는 튜리네티 궁전(Palazzo Turinetti).


1990년 이탈리아는 민영화와 규제 완화, 금융 시스템의 현대화와 효율성 증대를 위한 금융개혁을 단행했다, 이는 이탈리아가 유럽 통화 통합(EMU)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고 금융 시스템을 안정화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이때 개혁의 일환으로 저축은행의 임무를 ‘은행 업무’와 ‘자선 활동’으로 나눴다. 이때 저축은행이 수행해왔던 자선활동, 즉 사회공헌 활동은 국가기관이나 공적 기구에 합병하지 않고 분리해 ‘저축은행 재단’(La Fondazione Cassa di Risparmio)이란 별도의 기관으로 독립시켰다.

1990년 제정된 아마토 (Amato Law)법과 1998년의 시암피 법(Ciampi Law)에 따라 저축은행은 주식회사로 전환한 상업은행 업무를 전담하는 은행과 이전 저축은행이 운영하던 사회공헌 및 자선 활동은 새로 설립된 별도의 독립 법인인 ‘저축은행 재단’(Fondazioni Bancarie)이 담당했다. 재단은 은행에서 발생한 수익을 가지고 지역의 다양한 사회, 문화 및 교육에 투자한다. 재단은 저축은행의 주식을 보유할 수는 있지만, 재단이 은행을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돈을 버는 은행과 쓰는 재단의 역할을 분명히 해 은행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동시에 저축은행의 사회적, 자선적 실천을 독립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 저축은행 재단은 이탈리아의 금융 및 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교육과 건강은 물론 문화, 사회 복지 같은 분야의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자선 및 사회적 책임을 진다. 재단은 상당한 규모의 금융 자산을 관리하고 이를 다양한 부문에 투자하여 자선 활동에 필요한 수익을 창출해낸다. 재단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문제에 집중함으로서 중앙정부의 문화예술지원이나 대국민 복지정책과 차별화하고 있다.

▶▶필자 정준모는 미술평론가이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KAAAI) 대표다. 동숭아트센터와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시작해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과 전시부장을 맡았다. 이후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의 최장수 학예실장을 역임하며 근현대미술의 중요한 전시들을 기획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시 공예박물관 등 국내 여러 미술관 및 문화기관 설립에 중추적 역할을 한 행정가이기도 하다. 현재는 미술품 감정및 미술비평, 저술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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