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1월 26일 SK그룹의 최종현 선대회장이 ‘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인재를 키운다(十年樹木 百年樹人)’는 신념으로 비영리 교육 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을 만들었다. 재단 설립은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세계적인 우수 인재를 키우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최 선대회장은 당시 ‘우리나라가 아직 개발도상국이지만 인재를 키우면 얼마든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SK의 장학생 선발과 지원은 국비 유학보다 3년이나 앞섰다.
재단은 설립 초기에 당시 해외 유학을 꿈꾸기 힘들었던 인문사회 계열 인재를 선발해 치밀한 사전 교육을 거쳐 유학 비용과 생활비를 파격적으로 지원했다. 최 선대회장은 재단 이사들과 얘기하면서 “이왕이면 최고의 장학금으로 합시다. 돈 걱정이 없어야 24시간 공부에 전념할 수 있지 않겠소”라며 인재 투자에 열정을 보였다. 인재 양성이라는 본래 취지가 흐려질 것을 우려해 재단 이름에 자신은 물론 회사의 명칭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지원 조건에 유학 후 SK 근무 등의 단서도 일절 달지 못하도록 했을 정도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이 26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재단은 설립 이래 5000여 명의 장학생을 지원했고 약 1000명의 세계 유수 대학 박사 학위 취득자를 배출한 인재의 요람으로 성장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염재호 태재대 총장(전 고려대 총장), 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 등이 이 재단의 지원을 받아 해외 유학길에 올랐다. 재단은 국제 학술 교류 사업과 청소년 대상 지식 나눔 등으로 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선대회장의 유지를 계승·발전시키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은 “자원이 하나도 없던 시절 한국의 희망은 인재였고 글로벌 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지금도 핵심 자산은 인재라는 점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한다.
‘한강의 기적’은 기업들의 인재 양성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은 “사람이 모든 것이다. 기업도 사람이고 국가도 사람이다”라며 ‘인재제일(人材第一)’을 경영의 제1 모토로 삼았다. 그는 “기업이 귀한 사람을 맡아서 훌륭한 인재로 키워 사회와 국가에 쓸모 있게 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핵심 동력도 우수 인재 확보였다. 이 회장은 “내 일생의 80%는 인재를 모으고 기르고 육성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을 정도로 인재 육성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구자경 전 LG 명예회장도 인재 경영을 중시했다. 그는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뿐”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그는 1988년 그룹 인력 양성소인 LG인화원 개원식에서 “기업은 인재의 힘으로 경쟁하고 인재와 함께 성장한다. 인재 육성은 기업의 기본 사명이자 전략이요, 사회적 책임이다”라고 역설했다. 우리 기업들은 인재 발굴·육성이 기업의 이익을 넘어 사회와 국가에 대한 책무라고 여겼다. 민간기업이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인력 투자에 나선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 쉽게 찾을 수 없다.
반도체 등 우리나라의 전략산업은 미국·중국·유럽 등과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분야는 중국에 따라 잡혔거나 추월당하기 직전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글로벌 산업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세상에 없는’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기술 혁신은 결국 사람, 즉 인재 확보에 달렸다. 미국·중국 등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인재 육성 및 인재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인재 확보는 변하지 않는 핵심 가치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빠른 AI 시대에는 고급 인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뛰어난 두뇌 확보가 기업과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인재 키우기에 한계가 있다. 기업이 우수 인재를 많이 확보하고 압도적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국회가 전방위 지원 정책과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민관정이 ‘원팀’으로 인재 양성 총력전을 펼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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