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첫날에는 독재자가 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파격 인선과 함께 국정 대전환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트럼프는 14일(현지 시간) 연방수사국(FBI)과 연방검찰을 감독하는 법무장관에 극우 강경파 맷 게이츠 공화당 하원의원을,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국장에 털시 개버드 전 하원의원을 각각 지명했다. 전날 미군을 지휘하는 총책임자인 국방장관에 40대 영관급 예비군 장교를 파격 발탁한 데 이어 법무장관과 국가정보국장에도 40대의 충성파 정치인들을 배치한 것은 워싱턴의 기득권과 전쟁을 벌이겠다는 선전포고로 읽힌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당선인은 내년 1월 20일 취임 첫날 연방정부 재편 등 ‘마가(MAGA) 정부’를 위한 다양한 행정명령들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임기 첫날인 ‘데이원(Day One)’부터 약 일주일간 트럼프 당선인이 내릴 행정명령은 적어도 수십 개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첫 임기를 시작했던 2017년 1월 20일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오바마 지우기(건강보험개혁법 폐지)’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업무에 돌입했다.
당선 이후 트럼프의 인선을 보면 그가 취임 직후 시행할 정책들을 가늠할 수 있는데 불법 이민과 연방정부 재편이 최우선 순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는 백악관 비서실장 다음으로 ‘국경 차르’를 임명했으며 최대 후원자인 기업가 일론 머스크에게 정부효율부를 맡겼다. 또 극단적 보호무역주의자를 ‘무역차르’에 발탁할 방침이며 극우 강경파 정치인을 법무장관으로 지명하면서 ‘1·6 의회 폭동 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사면과 정적들에 대한 복수를 예고했다.
①사상 최대 불법 이민자 추방=“아이젠하워 모델을 따라 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추방 작전을 수행할 것입니다.” 트럼프가 올 9월 아이오와 유세에서 언급한 모델은 1950년대 아이젠하워 정부에서 130만 명에 달하는 멕시코인을 추방하기 위해 실시한 ‘웻백 작전’을 가리킨다. 웻백은 미국으로 불법 이주한 멕시코인을 비하하는 단어다.
트럼프 2기 데이원에 내릴 첫 행정명령은 강력한 국경 봉쇄 정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 내 불법 이민자는 약 11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스티븐 밀러 등 트럼프의 측근들은 이미 집권 2기에 연 100만 명을 추방할 방침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는 이를 위해 1798년 제정됐으나 지금은 사문화된 ‘적성국 국민법(Alien Enemies Act)’을 발동하고 연방 군대까지 동원할 방침이다. 남부 국경 장벽 재건설, 불법 이민 자녀 출생 시민권 부여 중단 등도 검토되고 있다. 그는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비용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②연방정부 축소…‘딥스테이트’ 해체=“트럼프는 두 가지 일을 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소모적인 연방 공무원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부 곳곳에 숨어 있는 적대 세력 ‘딥스테이트(국가를 좌우하는 기득권 집단)’를 완전히 없애는 것입니다.”(AP통신)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 첫 행보로 연방정부를 수술대에 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는 앞서 머스크를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발탁하면서 △관료주의 해체 △규제 철폐 △지출 삭감을 약속했다. 칼자루를 쥔 머스크는 기업인의 눈높이에서 방대한 미 정부 곳곳을 난도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공무원 감축을 위해 트럼프가 데이원에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스케줄 F’ 행정명령 부활이다. ‘스케줄 F’는 일반직 연방 공무원 중 고위직을 언제든 대체 가능한 정무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스케줄 F가 부활하면 이론적으로 220만 명의 연방 공무원 중 약 5만 명이 해고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③드릴 드릴 드릴…친환경 폐지=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취임 첫날부터 ‘드릴 베이비 드릴’을 시행해 에너지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드릴 베이비 드릴’은 석유 증산을 장려하겠다는 그의 선거 구호다. 트럼프는 데이원에 미국 내 석유·가스 시추를 대폭 늘리는 행정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조 바이든 정부가 추진했던 각종 기후 대응 정책을 모두 뒤집을 것으로 점쳐진다.
구체적으로 △파리기후협약 탈퇴 △전기차 의무화 정책 폐지 △풍력발전 프로젝트 중단 등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BBC는 “파리협약에서 탈퇴한다는 것은 미국이 더 이상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달성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④국가비상사태 선포 후 슈퍼관세=“관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예찬하는 트럼프는 취임과 동시에 공격적인 보호무역 조치들을 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보편적 기본관세 10~20%, 중국산 제품 관세 60%, 멕시코산 제품 관세 25% 등을 예고한 바 있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자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를 무역대표부(USTR)와 상무부를 포함해 행정부 전반에서 무역정책을 총괄 감독하는 ‘무역차르’에 임명할 방침이다.
미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발동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연방 정부 차원의 조사나 의회 동의 없이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IEEPA는 대통령에게 국가 안보, 외교 정책 또는 경제에 대한 광범위한 재량권을 부여한다. 상무부 고위 당국자 출신인 빌 라인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그가 첫날에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무엇인가를 하려 한다면 IEEPA가 유일한 답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⑤1·6 폭동 주동자 사면=트럼프는 2021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의회 의사당을 공격한 폭도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애국자”라 불렀으며 “취임 첫날 그들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의사당 공격 및 폭동 혐의로 1500명 이상이 기소됐고 트럼프 지지층은 이들의 사면을 요구해왔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 의회 폭동 피고인들을 사면하고 자신을 향한 연방 기소 사건들도 ‘셀프 사면’할 것으로 보인다. 또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뤄진 자신에 대한 수사 과정을 조사하는 정치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트럼프가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게이츠는 대표적인 극우 강경파 정치인으로 트럼프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충성파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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