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을 오래 앓으면 여러 장기를 망가뜨려 합병증을 유발한다. 눈에는 백내장, 당뇨망막병증, 녹내장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가운데 실명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당뇨망막병증이다. 당뇨망막병증은 망막에 분포하는 미세혈관이 손상돼 시력이 서서히 떨어지는 질환이다. 혈관 내 여러 성분이 망막으로 새어나와 망막부종을 일으키거나 눈 속에서 출혈이 비정상적으로 쉽게 일어나도록 하는 신생 혈관을 발생시킨다.
당뇨망막병증은 혈당이나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거나 신장질환, 고지혈증을 동반한 환자에서 발생하기 쉽다. 임신, 사춘기도 당뇨망막병증에 취약한 시기로 꼽힌다. 당뇨가 잘 조절되었더라도 유병 기간이 15년을 넘으면 환자의 60%, 30년을 넘으면 90%에서 당뇨망막병증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당뇨망막병증이 발생하면 혈당을 잘 조절하고 있어도 계속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력이 많이 손상된 후에는 회복 자체가 쉽지 않다. 당뇨병에 걸리면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초기부터 정기적인 안과 진료 등 실명 위험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당뇨망막병증은 대개 두 눈에 비슷하게 발생한다. 초기에는 망막의 작은 혈관들이 약해져서 혈청이 새거나 혈관이 막혀 영양 공급이 중단되는 비증식 당뇨망막병증이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는 망막출혈반점, 망막혈관이상, 망막부종 등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더 진행되면 혈관이 막힌 망막에서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 생산이 병적으로 늘어난다. 증식 당뇨망막병증 단계에 이르면 망막변성을 초래하거나 출혈을 일으키는 신생혈관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신생 혈관은 눈 속에 출혈을 일으킨다. 망막을 안구 내측으로 잡아당겨 망막이 떨어지는 견인성 망막박리를 일으키기 때문에 실명 위험도 높아진다.
당뇨망막병증 초기에는 혈당조절을 포함한 몸 상태에 따라 시력이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피곤하면 시력이 떨어지고 전신 상태가 좋으면 시력이 호전되는 식이다. 좀더 진행되면 혈관 내에 있는 성분들이 혈관 밖으로 새어 나와 망막이 두꺼워지고 염증이 동반되는 황반부종이 생겨 시력이 저하된다. 증식 단계에 들어서면 망막 신생 혈관에서 유리체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소량 출혈이 있는 경우 검은 점이나 줄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출혈량이 많으면 먹물 같은 검은 그림자가 생겨 전체 시야를 가리게 된다. 병이 많이 진행됐더라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당뇨병 진단을 받으면 정기적인 안과검진이 필수다. 산동제로 동공을 확대시킨 다음 시행하는 안저검사가 주로 시행되며 필요 시 팔에 주사를 맞으면서 진행하는 형광안저혈관조영이나 망막의 단층촬영(OCT)을 시행한다. 당뇨병 환자는 임신 중이라도 산동을 하지 않은 채 안과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당뇨망막병증 진단 후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가 필요한 단계로 진행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많은 연구에서 혈당을 엄격하게 조절하면 당뇨망막병증의 발생을 예방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고 증상도 완화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혈당이 정상범위 내로 유지될 수 있도록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 약물요법을 병행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당뇨망막병증의 진행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적절한 체중과 혈압, 혈중 콜레스테롤을 유지하고 동반질환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당뇨망막병증 예방을 위해 식전혈당 80~130mg/dL, 식후혈당 180mg/dL 미만, 당화혈색소(HbA1C) 6.5% 미만을 유지하도록 권고한다. 다만 모든 당뇨병 환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목표는 아니다. 환자의 연령, 당뇨병 유병기간, 동반질환에 따라 목표수치가 달라지므로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각자에게 맞는 치료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하게 진행된 비증식 당뇨망막병증이나 증식 당뇨망막병증 단계에서는 병이 더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광응고 레이저 치료를 시행한다. 눈 주변 혈관 중 많은 변화가 생긴 부분에 레이저 광선을 가해 기능을 떨어뜨리고 비정상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유리체 출혈, 견인막 등으로 시력이 더욱 저하된 경우 유리체 제거술과 같은 외과적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눈은 우리 몸에서 미세혈관이 가장 많은 부위인 만큼 당뇨병에 취약하다. 초기에는 별다른 자각증상이 없는 탓에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정도까지 진행된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당뇨병을 진단 받았다면 초기부터 주기적인 안과검진을 시행하고 적시에 치료를 받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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