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정부 예산안의 ‘준예산’ 편성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강도 높은 예산 삭감을 예고하고 나섰다.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1심 유죄 선고 이후 거대 의석을 앞세워 677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볼모로 삼고 보복성 심사의 칼날을 들이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를 둘러싼 민주당의 전방위적인 방탄 태세에 여당은 “사법부 겁박 종합 세트”라고 정면 비판했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9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에 대해 “시한에 얽매이지 않고 불필요한 예산은 과감히 감액해 국회의 예산 심사권을 확고히 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준예산 상황은 아직 염두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준예산 편성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12월 2일)이 아직 2주 가까이 남았지만 벌써 준예산을 거론하며 기한을 넘겨서라도 예산을 ‘칼질’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발언이다.
준예산은 국회가 정부 회계연도 개시일인 다음 해 1월 1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하지 않을 경우 최소한의 정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전년도에 준해 편성하는 예산이다. 2024년과 2023년 예산안 모두 법정 시한은 넘겼지만 직전 연도 12월 국회 문턱을 넘어 준예산 사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에는 회계연도가 넘어가더라도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민주당은 정부가 확정한 677조 4000억 원 규모의 예산안 가운데 대통령 부부 관련 예산 등 최대 6조 원의 삭감을 예고한 상태다. 이 가운데 야당이 가장 삭감을 벼르는 분야는 정부기관의 특수활동비와 정부 예비비 등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8일 야당 단독으로 검찰 특활비와 특정업무경비를 전액 삭감했다.
특히 민주당은 이 대표가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1심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징역형을 선고 받으면서 예산안을 고리로 정부·여당을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도 여야는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소관 예산안의 소위원회 회부를 앞두고 거친 공방을 벌였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경호처 예산이 2억 원 증액되는 안을 냈는데 2억 원은커녕 있는 예산도 다 삭감해야 한다”며 “국민을 겁박하고 언론을 탄압하는데 무슨 낯짝이 있어 예산을 더 올려달라 말하냐”고 쏘아붙였다. 이에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은 이 대표 1심 선고 후 대대적으로 정부 예산을 삭감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일종의 분풀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대표 판결 이후 사법부를 향해 연일 격앙된 반응을 쏟아내던 민주당은 추가 공세는 자제하면서도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단일대오는 강화하는 모습이다. ‘친명(친이재명) 좌장’ 정성호 의원은 “충격적 판결에 대해 분노가 생기더라도 판결은 판결”이라며 “너무 감정적인 발언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당내 비명(비이재명)계를 향해 “움직이면 죽인다”고 경고했던 최민희 의원도 이날 “발언이 너무 셌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한발 물러서면서도 “똘똘 뭉쳐 정치검찰과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28일 재표결하겠다는 방침도 거듭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이 대표 방탄 행태가 이제 ‘이재명 신격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수수 의혹을 받는 의원들을 거론하며 “윤미향 전 의원처럼 시간 끌기나 침대 축구 전술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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