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노동은 발암물질로 분류돼 유럽(일부 국가)에서 규제합니다. 새벽 배송을 하는 근로자를 위해 충분한 휴식과 임금을 더 보장하는 식의 사회문화적 기준이 이제 필요한 때입니다.”
안종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1988년 원진레이온 사건을 통해 직업병 문제를 우리 사회에 처음 공론화한 기자였다. 안 이사장은 취임하면서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산재 위험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약속했다. 직업병은 눈에 보이는 사고와 달리 정확한 원인 규명이 힘들고 서서히 근로자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안 이사장은 최근 서울 중구 안전보건공단 서울광역본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고로(용광로) 작업처럼 24시간 멈추지 않아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당연히 구별해야 한다”며 “음식이 아닌 제품은 새벽 배송에서 제외하거나 새벽 배송 근로자는 다음 날 오전 일을 막는 식의 사회적 기준에 대한 논의와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간노동은 기술과 시대 변화를 못 따라가는 노동법제의 한계를 파고들었다. 근로기준법은 야간노동에 대해 수당을 더 주거나 임산부나 연소자에게 제한하는 방식으로 느슨하게 규율한다. 이 입법 미비는 플랫폼 기반 유통 배송이 발달하면서 잇따른 사망 산재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최근 쿠팡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야간노동 규제에 대한 사회적 대화 참여 제안을 전격 수용한 배경이다. 안 이사장은 “그동안 우리나라 산재 예방 정책은 산재 사고사망자 감축에 집중됐다”며 “직업성 질병사망자를 줄이기 위한 산업안전보건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질병으로 숨진 근로자는 1204명으로 산재사고 사망자 812명 보다 약 1.5배 더 많다.
안 이사장은 2022년 취임 직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안착에 전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가 취임한 후 17일 뒤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 시행 전부터 이 처벌 두려움을 호소해온 기업에 사고 대응 보다 사고 예방의 중요성을 각인하는 게 안 이사장의 과제였다. 안전공단은 제조·건설업 4만5000여곳에 대한 안전체계 구축 컨설팅을 마쳤다. 올 법 전면 시행에 맞춰 8개월 동안 약 42만개 사업장이 스스로 안전체계를 점검하는 ‘산업안전대진단’을 받았다.
안 이사장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무조건 처벌된다는 것은 오해”라며 “사업주가 기본적인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잘 이행하면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안 이사장은 과거 석면, 가습기 살균제 등 우리 사회를 흔든 문제를 끈기 있게 매달렸다. 대안이 마련돼야 직성이 풀리는 ‘특종 기자’ ‘센 안전 전문가’였다. 안 이사장은 “2년 전 발생한 크레인 사고 때 직접 현장에 가 특정 회사의 부품 문제인 점을 확인하고 동일한 부품을 쓰는 여러 현장을 바꿨다”며 “공단은 사고 예방 대책에 도움을 줄 역량이 상당한데 연구 예산이 늘 부족했다”고 아쉬워했다.
안 이사장은 안전은 생활과 인식 속에 스며들어야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최근 그의 제안은 ‘색(色)’을 통한 안전이다. 안 이사장은 “대부분 검은색인 배달 기사의 복장과 헬멧, 배달통을 형광 주황색이나 노란색으로 바꾸면 산재 예방 효과를 훨씬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늘 새기는 안전 격언은 부모의 심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업주는 자신과 자신의 자녀가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며 “근로자는 안전이 보장받을 권리란 점을 잊지 말고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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