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각종 용품 유통의 메카였지만 현재 ‘도심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형 유통상가들이 정비의 시동을 걸고 있다. 서울시가 2월 준공업지역 개발 청사진을 밝히고 구체적인 방안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복합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구로구 구로기계공구상가는 9월 재개발·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를 출범하고 현재 약 1000명의 소유주에게 선호하는 개발 방식과 이주 계획 등을 묻고 있다. 1981년 준공된 구로기계공구상가는 7만 4476㎡ 면적 대지 위에 33개 동, 1120개 업체가 빼곡히 들어선 국내 최초·최대 산업용품 유통 단지다. 과거 서울 서남권 공단의 보급기지 역할을 하며 번성했지만 시내 제조업이 쇠퇴하며 활기를 잃었다. 구로기계공구상가 내 A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100여 개의 공실이 있지만 임차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오랜 기간 임대료도 오르지 않아 소유주들은 개발을 반긴다”고 전했다.
구로기계공구상가에서 본격적인 개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서울시가 올 초 ‘서남권 대개조’ 구상을 통해 준공업지역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준공업지역은 공장 건설을 권장하는 용도지역으로 서울에는 전체 19.97㎢ 중 약 82%가 서남권에 몰려 있다. 서울시는 준공업지역에 아파트를 지을 때 최대 250%이던 용적률을 400%까지 올려주고 필요한 경우 준공업지역을 상업지역·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하거나 ‘산업혁신구역’으로 지정해 자유로운 개발을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구로기계공구상가 같은 대형 시설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핵심산업 거점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언급했다.
추진준비위는 기존 유통 기능에 주거·업무 시설이 결합된 복합시설 조성을 큰 틀로 두고 구체적인 개발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추진준비위 관계자는 “일단은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서울시가 산업혁신구역 지정 및 유통시설 복합화 기준도 내놓겠다고 했기 때문에 추가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내년 상반기 발표를 목표로 구체적인 지정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상가 높이가 최고 3층에 불과하고 위치도 지하철 1호선 구로역 바로 앞인 만큼 사업성이 우수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대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구로기계공구상가는 1·2층 호실 두 개(대지면적 59㎡)가 한 개의 매물로 묶여 5억 5000만 원~6억 원에 호가가 형성돼 있다.
영등포구 준공업지역이자 지하철 2호선 영등포구청 인근에 위치한 영등포유통상가에서도 개발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 시장정비사업 추진위원회가 이달 13일부터 정비계획 수립을 맡을 도시계획업체를 선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지어진 이 상가는 도시계획시설의 일종인 유통업무설비로 묶여 있다. 앞서 2011년에 개발을 위해 시설 지정 폐지를 시도했지만 이주대책 등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폐지가 불발됐다.
물론 영등포유통상가는 별도의 용적률 체계를 따르는 시장정비사업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서울시의 준공업지역 규제 완화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발표로 일대 개발 기대감이 높아지며 사업 재추진에 탄력이 붙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추진위 관계자는 “지역 개발을 지원할 때 정비를 하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며 “400% 이상의 용적률을 받아 근처 영등포중흥S클래스 같은 주거복합건물을 짓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 유통시설 복합화 시범 사업지를 모집하면 서남권 대형 상가들의 개발 의지는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준공업지역 규제 완화의 일환인 이 사업은 유통시설이 포함된 복합 건물을 지으려는 상가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금천구 시흥유통상가 등의 참여 의지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대형 상가 개발은 용적률, 위치 등을 감안했을 때 사업성이 좋은 경우가 많지만 상권이 살아있는 곳은 개발 속도가 상당히 느릴 수 있다”며 “특히 시장정비사업은 세입자 대책을 추진계획 수립 때부터 세워야 해 사업 추진 시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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