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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폐암약 ‘렉라자’ 9주 복용했더니…“암수술 가능해져”

이계영 건국대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장

렉라자 선행항암치료 2상 임상 중간분석

조직검사 없이 폐세척액상생검으로 변이 진단

유한양행 '렉라자' 제품사진. 사진 제공=유한양행




국내 기술로 개발된 차세대 표적항암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를 9주간 복용하면 수술이 가능한 수준으로 폐암의 병기가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5일 건국대병원에 따르면 이계영 정밀의학폐암센터장(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은 최근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국제학술대회(KATRD 2024)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임상 2상 연구의 중간 결과를 공개했다.

폐암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폐세척 액상생검(Exosome-based BALF liquid biopsy)을 시행해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유전자 변이의 DNA를 찾아낸 다음 9주간 ‘렉라자’ 선행 치료를 시행한 연구다. 선행 치료를 마친 환자들은 병기 재평가를 거쳐 암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후 병리학적 폐암 진단 및 EGFR 유전자형을 확인하고 최종 수술 병기가 2기 이상 혹은 재발 위험이 높은 경우 3년간 '렉라자'로 수술 후 보조요법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조직검사 없이 폐세척 액상생검 만으로 폐암 진단의 정확성과 EGFR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는 민감도를 평가했다. 또 렉라자 선행 치료로 병기 하향을 유도하고 미세전이를 제거함으로써 수술이 불가능했던 폐암 환자가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전환되는지 살폈다. 궁극적으로 수술 후 재발률을 낮추고 폐암 완치율을 높일 수 있는지 검증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계영 건국대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장. 사진 제공=건국대병원


이날 발표에 따르면 폐암이 의심돼 정밀검사를 시행한 128명의 환자에게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통한 폐세척 액상생검을 진행한 결과 48명이 EGFR 변이 양성 소견을 보였다. 그 중 연구에 동의한 40명의 피험자에게 렉라자 투여를 시작했고, 9주간 선행 치료를 마친 34명을 상대로 수술적 절제를 시행한 결과를 분석했다.

분석에 따르면 전체 34명 중 19명(55.8%)에서 암세포가 30% 이상 감소하는 '부분 관해' 판정을 받았다. 다만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지는 '완전 관해'나 폐암이 진행된 사례는 없었다.



연구팀이 수술 조직의 병리 소견을 확인한 결과 34명 전원이 폐선암으로 판명됐다. 조직검사 없이 폐세척 액상생검 만으로도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을 진단하고 표적항암제를 투여하는 데 문제가 없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EGFR 유전자 검사 결과에서도 1명을 제외한 33명에서 유전자 아형이 97.1%의 일치율을 보였다. 폐세척 액상생검에서 음성이 나왔지만 초기 폐암이 의심돼 수술을 시행한 44명 중 EGFR 변이 양성으로 확인된 환자는 10명이었다. 이들을 포함한 1기 비소세포폐암에서 폐세척 액상생검의 최종 민감도는 77.3%로 확인됐다. 비소세포폐암 1A기, 간유리음영결절, PET-CT 검사에서 SUVmax가 낮은 경우 등 암 활동 지수가 낮은 초기 폐암의 경우 폐세척 액상생검으로 EGFR 변이 양성 환자를 찾을 수 있는 민감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이런 환자들은 영상 소견만으로 수술을 결정해도 무방하다는 게 연구진의 견해다.

이 센터장은 "재발율에 관한 최종 결과를 확인하려면 2~3년의 추적기간이 필요하다"면서도 "암 활성 지수가 높은(exosome shedder) EGFR 변이 폐암은 1기 일지라도 렉라자 선행 치료 후 수술을 시행하면 병기 하향을 유도해 재발률을 낮출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술 방식을 살펴보면 폐엽절제술이 90.3%로 가장 많았고, 쐐기절제술(6.2%), 분절절제술(3.1%) 등의 순이었다. 절제 부위에 미세 암세포 잔존이 확인돼 재발 방지 차원에서 렉라자를 추가 복용 중인 1명을 제외한 대다수(97.5%) 환자는 병변이 완전히 제거된 것으로 확인됐다. 병리학적 소견에 따르면 완전 관해(CPR)는 없었고, 수술 전 선행항암치료(신보조요법)의 지표가 되는 주요병리관해(Major Pathologic Response)는 18.2%의 비율을 보였다. 이는 EGFR 표적항암제를 이용한 다른 신보조요법의 최신 임상 연구들과 유사한 수준이다.

렉라자는 유한양행(000100)이 개발해 2021년 국내 31번째 신약으로 허가 받은 3세대 EGFR 티로신키나제 억제제다. 기술수출 파트너인 얀센이 렉라자 병용요법으로 새로운 효능을 입증하고 지난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으며 국산 항암신약 최초로 글로벌 블록버스터로서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폐암은 암세포 크기, 형태 등 병리조직학적 기준에 따라 크게 소세포폐암과 비소세포폐암으로 나뉜다. EGFR은 전체 폐암의 약 80%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에서 가장 흔한 돌연변이다. 종양세포의 신호전달경로를 활성시켜 성장을 촉진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매개 효소가 티로신키나제다.

렉라자와 같은 3세대 EGFR 티로신키나제 억제제는 약물 전달을 막는 뇌혈관장벽(BBB) 투과율이 우수해 뇌전이에도 뛰어난 치료 효과를 보인다. 다만 EGFR 표적항암제를 이용한 신보조요법은 면역화학 항암치료를 이용한 신보조요법의 주요병리관해율(50~60%)보다 낮아 아직까지 표준치료로 자리 잡지 못했다. 연구팀은 이번 임상 참여 환자의 55%에서 병기 하향이 확인되면 수술 전 선행 치료를 통해 재발율까지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입증되는 만큼, 폐암 치료의 새 패러다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식약처의 승인을 받고 20명의 추가 환자 모집에 나섰다.

이 센터장은 “이번 연구에서 1B기 이상의 환자들은 60~100%에 가까운 병기 하향율을 보였다"며 "연구 프로토콜을 보완한다면 임상적 효능을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렉라자의 선행 치료 기간을 9주에서 6개월 이상으로 늘리거나 렉라자와 항체약물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 병행 선행치료를 시행한다면 낮은 주요병리관해율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는 “비록 중간 연구 결과이지만 EGFR 표적항암제의 효과가 예상되는 EGFR 변이 폐암 환자를 별도의 조직 검사 없이 성공적으로 진단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희망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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