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럽 최빈국이었던 아일랜드가 낮은 법인세율로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하며 막대한 재정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아일랜드의 법인세 수입은 375억 유로(약 5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10년 전 46억 유로(약 7조원)에 비해 8배 이상 급증한 규모다. 1인당 법인세 수입으로 환산하면 약 7000유로(1025만원)에 이른다.
아일랜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법인세율을 12.5%로 유지했다. 이는 프랑스(33%)의 3분의 1 수준이며, 미국·영국(20%대)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미국과 EU의 역외 조세회피 단속 강화도 호재로 작용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케이먼 제도 등 조세회피처 활용이 어려워지자, 상대적으로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로 눈을 돌렸다. 이에 애플, 구글 모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화이자 등이 유럽 본사를 아일랜드로 이전했다.
법인세 수입을 바탕으로 아일랜드 정부는 적극적인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다. 수도 더블린에 약 22억 유로를 투입해 어린이 병원을 건설 중이며, WSJ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어린이 병원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주택과 풍력발전소, 홍수 방지 시설 등에도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WSJ는 "한때 대량 이주로 유명했고 금융위기로 거의 파산할 뻔한 나라가 이제는 각종 인프라 건설을 위해 노동자를 수입하고 있다"며 "한 세대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행운과 같은 변화"라고 평가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재정 흑자에도 마냥 웃을 순 없다"고 진단했다. 법인세 수입이 전체 국가 수입의 27%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 60%가 10개 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법인세 수입 감소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일랜드는 주변국 압박으로 연간 매출 7억5000만 유로 이상 기업의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인상하기로 했다. 미국 기업의 법인세율을 15%로 인하하겠다고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기 행정부 출범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아일랜드 외국인직접투자청(IDA)의 피어갈 오루크 청장은 "과거 미국의 법인세 정책이 바뀌는 데에 30년이 넘게 걸렸고, 그사이에 별다른 일이 없었다"며 "미국에서 조만간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아일랜드는 1840년대 감자 대기근으로 400만명 이상이 이민을 떠나는 고초를 겪었으나, 저세율 정책으로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하며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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