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혼수용 그릇 세트로 인기가 높은 수공예 도자기 브랜드 ‘광주요’. 1963년 이천에서 설립된 광주요는 한국인의 생활 수준이 크게 높아진 198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무역에 뛰어난 수완을 가진 1대 조소수(1912~1988)는 이천 지역의 장인들을 고용해 전통 도자기를 생산하고 도쿄에 광주요 동경 전시장을 운영하며 도자기를 판매했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가스 가마가 보급되면서 수공예 생활 식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분청 장식 기법의 혼수용 그릇과 가정용 식기 세트 등을 활용해 한식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전통 증류식 소주를 개발하는 등 현대 한식 문화를 선도했다.
한국 현대 도자공예는 국가무형문화, 디자인, 산업, 건축,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주로 기법과 양식에만 주목해 과거의 것으로만 여겨져 온 게 사실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한국 현대 도자공예: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은 195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역동적인 한국 사회에 반응하며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해 온 현대 도자공예에 대한 편견을 깨는 전시다.
전시 도입부인 ‘현대성의 태동’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그늘과 한국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자 한 1950년대 한국 현대 도자공예의 출발을 살펴본다. 이 시기 도자기는 수출을 위한 상품이었다. 그 중심에는 ‘성북동 가마’와 ‘대방동 가마’가 있었다.
국립박물관(현 국립중앙박물관) 부설 기관으로 설립된 한국조형문화연구소는 ‘성북동가마’를 운영, 조선백자를 계승했으며, 조각가 윤효중(1917-1967)이 세운 한국미술품연구소는 ‘대방동가마’를 운영하며 고려청자의 정체성을 이었다. 두 가마에서는 ‘백자청화북단산장재떨이’와 ‘청자상감인물문화병’ 등의 작품이 탄생했다.
1부 ‘정체성의 추구’에서는 한국 도자 공예가 현대적으로 변모하는 1960~1970년 대 시기를 다룬다. 당시 정부는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도자 전통을 부활하고자 했다. 덕분에 이 시기에는 유명 도예가와 화가들이 협업한 청화백자가 다수 제작됐다. 전시관에서는 도예가 안동오와 화가 서세옥, 김기창 등이 협업한 이건희컬렉션 ‘도화(陶畫) 시리즈’ 12점을 최초로 만나볼 수 있다.
2부 ‘예술로서의 도자’에서는 1980~1990 년대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이벤트를 계기로 국제 예술 양식을 적극 수용한 도자 공예 작품이 등장한다. 여성 도예 그룹 ‘흙의 시나위’ 창립 멤버로 활동한 한애규의 ‘날개를 단 여인’ 등은 도자 공예가 무언가를 담는 용기에 국한되지 않고, 조각이나 예술 작품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한 2부에서는 1997년 외환 위기 전후 수공예 생활 도자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등장한 광주요와 이도를 설립한 이윤신의 작업을 통해 미적 가치를 담은 생활 도자의 정착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3부 ‘움직이는 전통’은 21세기 이후 현대 도자공예가 추구하는 다원화, 혼종성, 탈식민화의 모습을 소개한다. 이 자리에서는 특히 팬데믹 이후 K-공예를 이끄는 스튜디오 소만의 김덕호, 이인화 작가와 문도방, 두갸르송 수공예 도자 공방 등 젊은 세대를 통해 SNS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감각적인 도자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김덕호·이인화의 ‘2022 블루보틀 명동점 사이니지’가 대표적이다. 이들 작가군은 한국 도자가 실용성과 예술성 측면에서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다. 전시는 내년 5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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