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3명 중 1명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장기적 목표에 대한 끈기와 열정 뜻하는 심리학적 특성인 ‘그릿’(GRIT)이 강한 사람일수록 불면증의 발병률과 중증도가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5일 분당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윤창호·김재림 신경과 교수진은 ‘한국인의 수면·두통’에 관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2500여 명의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토대로 그릿과 불면증 간 연관성을 밝혔다.
불면증은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잠에 들더라도 자주 깨는 등 수면의 질이 낮은 질환이다. 방치할 경우 정신질환이나 심장질환, 당뇨병, 면역력 저하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과거 불면증 치료는 수면제 등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 들어선 약물 치료에 앞서 수면을 방해하는 생각, 행동, 습관 등을 교정하는 ‘인지행동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권고되고 있다. 단순 약물치료만으로는 치료효과에 한계가 있고 의존성이나 내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진은 그릿이라는 특성에 주목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앤젤라 더크워스가 개념화한 그릿은 △근성 △끈기 △대담성 △회복 탄력성 △야망 △성취욕 △성실성 등의 심리 요소로 구성돼 있다.
이에 연구진은 해당 요소와 관련된 10여 개의 문항에 대해 1점에서 5점 사이의 점수를 매기고 평균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릿 점수가 높을수록 좌절 상황에서도 인내심을 갖고 성취 실현에 대한 노력을 일관성있게 이어가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평균 그릿 점수는 3.27점(5점 만점)이었고, 1.5점 이상 2.0점 미만인 최하 구간의 불면증 호소 비율은 75% 안팎이었다. 반면 그릿 점수가 3.5점 이상인 구간에서는 점수가 높을수록 불면증 비율이 낮아졌다. 3.5점 이상 4.0점 미만에서는 해당 비율이 9.3%였고, 4.0점 이상 4.5점 미만에서는 8.5%로 나타났다. 4.5점 이상인 구간에서는 불면증 호소 비율이 0%였다.
그릿 점수는 불면증의 중증도와는 반비례했다. 그릿 점수가 1점 증가할 때마다 불면증을 호소할 확률이 60% 감소하고 수면의 질 저하를 겪을 확률도 45%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간 그릿은 학업이나 직업적인 성취와 관련성이 깊다고 알려진 바 있다. 연구진은 수면의 질을 높이고 불면증 완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한 데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창호 교수는 “그릿은 우울증 등 불면증을 유발하는 요인에 대해 완충작용을 하고, 압박·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우리 몸의 대응력을 강화해 불면증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불면증 치료 시 환자의 그릿을 평가하고, 이를 높일 수 있는 치료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수면의학회 공식 학술지인 ‘수면의학(Sleep Medicine)’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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