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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디섐보처럼 소금물에 골프볼 담가보니

골프볼 편심 어떻길래[호기심 해결소]

1930년대 타이틀리스트 탄생 배경

캘러웨이 골프볼 광고도 편심에 초점

중력 영향 완벽한 구형 제작 힘들어

짝퉁볼 실험해보니 무게중심 안 맞아

브라이슨 디섐보는 대회 출전에 앞서 소금물에 골프볼을 담근다. 볼의 편심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다. 디섐보처럼 골프볼을 소금물에 담가 무게중심을 살펴봤다. 사진 제공=유영호(나우스튜디오)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물리학 전공자답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언의 길이를 전부 똑같게 만들고, 그린 경사를 파악하기 위해 컴퍼스를 들고 다니기도 했다.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몸집을 헐크처럼 불리기도 했다. 그의 행동이 때론 ‘괴짜’처럼 비치지만 나름 논리적이고, 때론 그만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디섐보는 올해 6월 US 오픈 때는 라운드 전 골프볼을 소금물에 담갔다가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밝혀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그는 “볼을 아무리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중심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게 마련”이라며 “볼을 소금물에 띄우면 무거운 쪽이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면 볼 맨 위에 점을 찍어 표시한 뒤 그 점이 보이도록 놓고 굴리면 똑바로 굴러간다”고 설명했다.

디섐보가 언급한 내용은 볼의 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편심’에 관한 것으로, 이 문제는 사실 오래 전부터 골프볼 제조업체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했다. 현재 전 세계 골프볼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타이틀리스트가 탄생한 배경에도 이 편심이 자리하고 있다.

1935년 타이틀리스트가 자사 볼(위)과 타사 볼의 코어 위치를 비교해 내보낸 광고. 사진 제공=타이틀리스트


1932년의 엑스레이 촬영과 오늘날의 CT 스캔

타이틀리스트 브랜드를 보유한 아쿠쉬네트의 창립자인 필 영은 1932년 어느 날 치과의사인 친구와 라운드를 했는데, 퍼팅그린에서 잘 맞은 볼이 똑바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문이 생겼다. 곧장 치과의사 친구의 사무실로 간 그는 볼을 엑스레이로 찍어봤다. 그 결과 대부분 골프볼의 코어 위치가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필 영은 일관된 성능과 품질을 가진 볼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볼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그로부터 90여 년이 지난 현재. 캘러웨이의 크롬소프트 볼 TV 광고는 ‘프리시전 테크놀로지(정밀 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볼을 정밀하게 제조한 덕분에 편심이 거의 없다는 내용이다. 캘러웨이 측은 “볼을 제조할 때 1000분의 1인치

0.0254mm) 수준의 오차 범위 내에서 관리를 한다. 또한 기존 3D 엑스레이 기술을 대신해 CT(컴퓨터단층촬영) 스캔으로 모든 레이어와 코어를 정밀 검사한다”며 “이러한 기술을 통해 각 레이어가 정확하게 배치돼 있는지 확인하고 미세한 편차를 검출한 뒤 고품질의 볼만 출고한다”고 설명했다.

소금물에 볼을 담근 후 떠오른 볼의 맨 위 지점을 마커로 표시했다.




머스크의 꿈이 현실로…화성에서 볼을 만든다면?

편심이 여전히 골프볼 제조과정에서 이슈가 된다는 건 완벽한 무게중심을 가진 볼을 만드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바로 중력이 원인이다. 지구 중심을 향해 중력이 항상 작용하기 때문에 완벽한 구형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 또 다른 구형의 물체(코어)를 정확한 지점에 위치시킨다는 건 엄청난 난제다. 인공지능과 우주 개척 분야 등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가 화성(지구 중력이 1일 때 화성 중력은 0.38)에 인류의 거주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골프볼 제조공장을 세운다면 지금보다 훨씬 정교한 볼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볼의 무게중심이 어떤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 볼을 소금물에 담가봤다. 6개 브랜드 제품 9종류에 A 브랜드의 중국산 가짜 볼까지 총 10종류 제품을 테스트했다.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던 볼과 몇몇은 업체 측으로부터 협조를 받았다. 각각의 볼을 몇 차례 소금물에 넣어보면서 다시 떠오를 때마다 맨 위의 지점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편심 여부를 체크했다.

편심이 없으면 볼이 떠오르는 맨 위 지점이 매번 달라진다.


A 브랜드의 짝퉁 볼(왼쪽)과 진품 볼의 내부 모습. 짝퉁 볼은 2피스, 진품은 3피스 구조로 확연히 다르다. 또한 무른 소재로 만들어진 짝퉁 볼은 공업용 가위로 잘랐을 때 단면이 매끈하다. 그만큼 무르다는 뜻이다. 진품 볼은 조직이 치밀하기 때문에 자르기도 힘들고, 단면도 거칠게 나타난다.


정상 볼은 편심 거의 없었는데, 짝퉁 볼은 ‘역시나’

실험 결과 대부분의 볼에 찍히는 점은 거의 매번 달라 편심이 크게 없는 듯했다. 다만 일부 볼의 경우에는 떠오르는 위치가 한 지점은 아니지만 특정 구역으로 쏠리는 듯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무게중심이 미세하게나마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가장 기대가 됐던 건 ‘가짜 볼’이다. A 브랜드의 볼을 위조해 중국에서 제조된 이 짝퉁 볼은 국내에서 로스트볼로 둔갑해 팔리다가 올 봄 특허청 암행단속에서 적발됐다. 우리는 이 볼을 A 브랜드를 통해 몇 개 확보할 수 있었다. 짝퉁 볼을 소금물에 넣어 실험을 해보자 확연히 특정 부분이 매번 위로 떠오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편심이 있다는 것이다. 볼을 반으로 갈라보니 내부 구조도 완전히 달랐다. 진품 볼은 3피스 구조인데 짝퉁은 2피스 구조였던 것이다. 해당 업체 측은 “사용된 소재 자체도 다르다”고 했다. 공업용 가위로 볼을 자를 때 손에 전달되는 느낌도 달랐다.

이번 실험이 기술적으로나 학술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짝퉁 볼을 제외한 대부분의 볼에서는 편심이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 최근의 골프볼 제조업체들은 첨단 제조공정과 꼼꼼한 검수 과정을 통해 볼을 생산하고 있다. 90여 년 전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 그럼에도 디섐보는 왜 소금물에 여전히 볼을 담글까. 그 반대로 다른 프로 선수들은 왜 소금물에 볼을 담그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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